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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용있는불독38
위용있는불독3823.03.04

김옥균이 꿈꾸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지 궁금합니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어찌 일으컸나요? 갑신정변을 통해서 조선을 어떤 나라로 만들고자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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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을 통해 청의

    간섭에서 벗어난 자주독립 국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김옥균을 포함한 개화당의

    개혁안은 백성들의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군사력에 너무 의존해서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옥균은 한양의 북촌에 살면서 양반 자체들과 사귀면서 친구로 지냈습니다. 어려서부터 문장이나 시를 잘쓰고, 그림을 잘그렸던 김옥균은 공부를 열심히 해 22세에 과거 시험에서 1등으로 장원 급제를 하게 됩니다. 김옥균은 자신처럼 북촌에 살고있는 박규수의 사랑방을 자주 찾아갔는데, 박규수는 청나라를 두번이나 다녀와서, 서양의 근대 문물을 본 후 조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김옥균은 박규수의 개화 사상을 받아들여 그의 제자가 됩니다. 이들을 통해 신식 군대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옥균이속한 계열을 개화파 또는 개화당이라고 부르는데, 정변을 일으키자니 돈은 이 없었습니다. 그때 일본이 군사 150명과 3백만엔을 빌려주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김옥균은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김옥균은 일본의 도움을 받아 정치 권력을 잡으려고 했던것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화 정책은 민씨 척족과 그 일파가 장악한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이들은 임오군란 후 흐트러진 군제(軍制) 개편에 주력하였고, 개화 자강 기구의 신설을 주도하며 청나라식 개화 정책을 주관하였다.

    반면 개화당(開化黨)의 박영효(朴泳孝), 윤웅렬(尹雄烈)은 각각 광주‧북청에서 신식 군대를 양성하였고, 『한성순보(漢城旬報)』 발간과 치도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하였다.

    고종의 지지를 등에 업은 개화 사업들은 민씨 척족의 반발로 중단되었지만, 개화당 세력은 여전히 고종의 신임을 받는 가운데 외교, 정치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성장해 나가면서 민씨 척족 일파와 대립하였다.

    개화당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였고, 완전한 자주국(自主國)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반청 외교 노선은 자주 국체를 유지하려는 고종의 의도와 부합하였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위의 내용처럼 김옥균은 개화당 소속으로 급진주의 개혁파에 속합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외세의 간섭없는 완전한 자주국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