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박사님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이휘소 박사님 천재물리학자로 알고 있는데, 이분이 핵개발을 연구를 진행 중에 의문사를 당했다고 알고있습니다.
이분이 남김 업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싶습니다.
![답변의 개수](/questions/_next/image?url=https%3A%2F%2Fmedia.a-ha.io%2Faha-qna%2Fimages%2Fcommon%2F3D%2Fanswer.png&w=64&q=75)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휘소 박사의 업적으로는 게이지 이론 재규격화 입니다.
1972년 미시세계의 현상을 근본적으로 설명하는 기초이론을 실험을 통해 검증해냈습니다. 이로 인해 미시세계의 현상을 의미있는 이론값으로 계산할수 있었고 실험적으로 확인이 가능해졌습니다.
또, 참 입자의 탐색으로 1970년 K-중간자의 희귀붕괴 과정에서 새로운 참 쿼크가 예견되었는데 이휘소 박사는 참 쿼크의 탐색방도를 여러방면에서 제시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1974년 11월 실제 새로운 입자의 존재가 발견됩니다.
이로 인해 이휘소 박사는 단순히 유명한 이론물리학자에서 더 유명한 현상론 물리학자가 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휘소(李輝昭)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천재 물리학자이다. 그는 새로 전개되는 소립자 물리학 이론의 선두에 선
물리학자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반열에 올랐던 과학자였다. 비운의 교통사고로 1977년 42세로 요절했으나 그가
제시한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는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을 확립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울 출생. 서울대학 화공과에 재학 중 1954년 도미,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196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입자물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1962년 프린스턴고급과학연구소 연구 후, 1963년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가 되고, 1966년부터 미국 스토니브룩의 뉴욕주립대학 교수로 있다가 1972년부터 페르미가속기연구소의 이론물리학 연구부장이 되고 시카고대학 교수를 겸하였다.
1960년대부터 입자의 복합모형이 제창되어 수학의 리군이론이 많이 사용될 때 그 발전에 기여하였다. 1967년 이후에 와인버그와 A.살람이 입자물리학의 네 힘 중에서 특히 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일하여 만든 전기약작용을 재규격화할 수 있다는 이론적 증명을 함으로써 입자물리학 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하였다. 특히 1970년대에는 네번째 쿼크인 참쿼크의 존재가 예견되었을 때 이와 관련된 이론적 연구업적은 잘 알려져 있다.
1974년에는 서울대학에 대한 국제개발처(AID) 교육차관 타당성 조사단의 일원으로 일시 귀국하여 한국 물리학계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1977년 6월 16일 콜로라도주(州) 국립과학연구소의 초청강사로 가는 도중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42세로 죽었다.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휘소 교수는 벤자민 리로 더 많이 알려져있는 이론물리학자로 자료에 따르면 교수님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폭넓은 연구를 했으며, 특히 1965년경부터 SU(6) 이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에 물리학계의 큰 쟁점이었던 콰크(Quark)와 참(Charm)이론 연구로 명성을 높였고, 약작용과 전자기력을 통합하는 통일장이론(統一場理論)에도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4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