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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08.09

고려와 거란의 외교에서 거란이 강동 6주를 고려에 준 이유가 무엇인가요?

서희의 외교 담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거란은 왜 고려에게 강동 6주를 준건가요?

고려를 침략한건 거란인데 되려 고려에게 땅을 준 것은 무슨 의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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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요나라의 1차 침입 때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요나라와 통교하는 조건으로 강동 6주의 영유권을 인정받는 화약을 체결하였다고 합니다.

    지리적으로 군사상·교통상의 요지였던 강동 6주는 고려 건국 이후 줄곧 여진족이 거주하여 고려의 북방 진출에 큰 장애가 되었던 곳으로, 고려는 서희의 담판 이후 994년(성종 13년)에는 요나라의 간섭 없이 청천강 이북의 여진족을 토벌하고 강동 6주를 점령하였습니다.

    강동 6주의 점령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후 고려와 거란은 압록강을 경계로 국경을 접하게 된다. 고려는 보주를 제외한 압록강 이남의 영유권을 인정 받고 사대를 조건으로 화친을 맺었다. 아울러 고려에서는 요나라와 여진족을 막으려고 흥화진 북쪽의 압록강 어귀에서부터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게 된다. 사실상 고려 북진정책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북진 전진 기지인 서경의 입지는 크게 약화되어, 훗날 묘청의 난과 고구려 부흥운동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합니다.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결과는 정확히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는 요나라의 정삭(正朔)을 받아들인다. 고려는 요나라의 책봉을 받고 요나라와 조공무역을 한다.
    ▲요나라는 압록강 동안(東岸) 280리의 땅(즉 강동 6주)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참고로, ‘고려가 요나라의 정삭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고려가 요나라를 천하의 중심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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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동6주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은

    거란이 여러 차례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고려가 이를 끝내 거부하였습니다.

    그러자 거란이 다시금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였는데, 이때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대가 거란군을 여러 차례 격퇴하였으며, 특히 귀주대첩은 거란의 침입을 격퇴한 가장 큰 승리였습니다.

    이후 거란이 강동6주의 반환 요구를

    철회함으로써 고려의 영토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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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희와 소손녕은 동등한 자격으로 서로 인사를 한 후,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어요. 먼저 소손녕이 서희에게 두 가지 요구 사항을 말했답니다.


    이때 소손녕이 제시한 요구 사항은 무척 대담한 것이었어요. 무려 영토를 내놓고 자신의 나라를 섬기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고구려의 땅을 계승할 권리가 고려에게는 없소.


    그런데도 지금 고려는 우리의 국경을 침범하고 있으니 당장 땅을 내놓으시오. 이것이 우리의 첫째 요구 조건이오.


    또 고려는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어찌 바다 건너 송과 더 가깝게 지내는 것이오?


    고려는 송과의 관계를 끊고 거란을 높이 모시도록 하시오. 이 두 가지가 우리의 요구 조건이오.

    소손녕의 요구에 서희는 강경한 태도로 반박했어요.


    특히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뒤를 이어 세워진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고려의 도읍을 서경이라고 말했어요. 고려의 도읍은 개경이었지만, 서경은 고구려의 도읍이었거든요

    지역을 따지자면 만주는 모두 옛 고구려의 땅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오히려 당신네들이 우리 땅을 차지한 거지, 어찌 우리가 국경을 침범했다고 할 수 있겠소?


    또, 우리도 당신네 나라와의 교류를 시도한 적은 있었소. 그러나 그 사이에 서북쪽 해안 지대에 여진이 살고 있어 현실적으로 힘이 들더이다.


    그러니 거란과 고려의 관계가 친밀하지 못한 것은 여진 때문이라는 말이오.

    서희는 고려가 송과 친하게 지내고 거란과 교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어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북쪽 압록강 부근의 지역도 고려 땅인데 지금 여진이 차지해 길을 막고 있지 않소?


    이곳을 지나가기는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오.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길을 통하게 하면 두 나라가 서로 왕래를 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니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것보다 여진을 쫓아내는 것이 급선무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그곳을 지키며 거란과 친하게 지내겠소.

    소손녕은 서희의 논리적인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어요. 서희의 작전이 소손녕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던 셈이지요.


    사실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뒤를 이은 나라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수도를 일부러 개경이 아닌 서경(오늘날의 평양)으로 말했답니다.


    소손녕은 대화가 끝난 후 자신의 왕에게 결과를 보고하였고, 요의 왕은 ‘고려와 화해하고 그만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그리고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압록강 동쪽 280리 지역을 고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여진을 쫓아내는 데에 거란이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이었지요.

    고려는 여진을 몰아내고 ‘강동 6주’에 성을 쌓았어요. 강동(江東)은 강의 동쪽 즉 ‘압록강의 동쪽’을, 6주(六州)는 ‘여섯 개의 마을’을 뜻해요. 흥화진·용주·철주·통주·곽주·귀주입니다.


    강동 6주의 획득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국경을 압록강까지 넓히게 된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출처 : 생방송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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