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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4.01.28

조선에서 환향녀는 어떻게 되었나요?

청에 끌려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되돌아온 환향녀들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이미 조선에서 결혼한 여인은 돌아와서 강제로 이혼당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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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1636)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청으로 끌려간 피로인의 수는 약 5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은 피로인을 쇄환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일부 속전을 지불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피로인 가운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라고 합니다. 이들은 가까스로 귀국한 뒤 남편으로 부터 이혼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조와 인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대신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환향녀들이 이렇게 사회 문제가 되자 인조는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여성들에게 "홍제원의 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한양으로 들오면 그 죄를 묻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조를 거론하면 엄벌하겠다고 영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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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2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환향녀는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하군요.

    병자호란 때에도 청나라로 여성들을 끌고간 일이 많았어. 청나라로 끌려간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뒤에 돈을 주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양반집 여성들은 청나라가 돈을 많이 요구해 그곳에서 생명을 끊거나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온 여성을 '환향녀'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욕에 인조와 상당수의 양반들조차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했을 정도입니다. 일부 야사로는 청군이 여자들을 끌고 갈때는 그래도 연약하다고 말을 내주기도 하고 그걸 남자 조선포로들이 끌게 했는데, 남자 포로들이 지금 오랑캐들에게 잡혀가는데 '정절을 지켜라!'라고 여자들을 말에서 끌어내려 죽이기도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다만 당시의 조선은 국민들을 지켜줄 생각도 않으면서 도망쳐온 사람들을 멸시하기만 하는 나쁜 집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고 합니다. 조선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전통사회, 유교사회를 찬양하는 시각과 비하하는 시각의 양극단의 주장이 많아서,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주의를 요한다. 임진왜란 이후 인구가 격감했기 때문에, 포로가 된 사람을 죽어라 내버려두는 식의 멍청한 짓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던 조선 정부는 포로를 송환하기 위해서 꽤 노력했고, 안되면 국가 재정으로 포로의 몸값을 지불해서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도망쳐 온 사람들도 겉으로만 송환하겠다고 했을 뿐 실제로는 숨겨주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또한 여인들이 홍제원의 물에 목욕을 하면 깨끗해진 것으로 간주하고, 난리에 끌려갔다는 이유만으로 이혼하거나 여성을 내치는 것을 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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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닙니다.

    병자호란 등으로 끌려갔던 여성들이

    다시 돌아온 이후에 국가에서는 이들을

    홍제원에서 목욕을 하면 깨끗해진 것으로 간주하고

    이혼하거나 여성을 내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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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청나라로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들의 삶을 비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마을에 같이 살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집단거주하였으며 손가락질 받으며 멸시와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또 아이를 베고 돌아온 여자들은 뱃속 아이를 지키려다보니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을 가르켜 화냥년이라고 하였고 그녀의 아이를 호로자식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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