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rogermaan
rogermaan23.06.12

중세 시대 유럽의 흑사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나요

중세시대 흑사병으로 수많은 유럽인들이 고통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흑사병이란 명칭도 참으로 무섭게 느껴지는데요 어느 정도의 피해를 주었는지 거치대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 중세 흑사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 인구는 4억 5천만 명에 달했으나,

    대역병의 풍파가 지나간 후 15세기에는 3억 5천만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최소 1억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시기에 2억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흑사병은 페스트라고도 부르는 유행성 감염 질환을 의미합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재난이 있었지만, 사망자의 수만 본다면 중세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흑사병이 가장 규모의 큰 재앙이었습니다. 이 질환은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습니다.


    흑사병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이 질환은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 지역을 건너 흑해, 크림 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크림 반도의 카파는 지중해를 무대로 동방 무역을 하던 제노아 상인들이 오랫동안 경영한 도시였습니다. 1347년 이 성채를 포위 공격 중이던 타타르군은 영내에 흑사병이 발생하자, 환자들의 시체를 일부러 성벽에 내버린 후 철수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일종의 세균전과 같은 발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내로 전파된 흑사병은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무서운 역질을 피해 본국으로 철수한 이탈리아인들이 상륙한 순서에 따라 흑사병이 메시나, 제노아 등지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원래 이 질환은 쥐벼룩에 의해 전파되는 옐시니아 페스티스라는 균의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흑사병이 그토록 맹위를 떨치게 되는 것은 징기스칸의 서방 원정과 더불어 이동한 아시아 쥐들이 유럽에 원래 살고 있던 쥐들을 구축하고 번창하였기 때문이라는 생태학적인 가설도 있습니다. 즉 흑사병의 숙주가 되는 새로운 쥐와 쥐벼룩의 수가 갑자기 증가하였기 때문에 흑사병이 창궐할 수 있었다는 학설입니다.


    이 균에 감염되고 약 6일간의 잠복기가 지나면 환자는 흉부 외 통증, 기침, 각혈, 호흡 곤란, 고열을 호소하게 되며, 환자는 대부분 끝내 의식을 잃고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내출혈로 인해 생기는 피부의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으로 불리는 이 질환은 어깨 밑, 서혜부, 목과 귀 뒤에 생기는 달걀 크기의 종창을 동반하는 림프절성 페스트입니다. 이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천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불가항력적인 재앙이었습니다.

    출처 : 서울아산병원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에서 7500만~2억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지대에서 시작되어 비단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해 1343년경 크림반도에 닿았고 화물선에 들끓던 검은쥐에 기생하던 동양쥐벼룩을 기주로 하여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이때 흑사병으로 유럽 총 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흑사병 이전 세계인구는 4억 5천만명으로 추산되는데 14세기를 거치며 3억 5천~3억 7500만명 정도로 1억명이 줄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흑사병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전파돼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1300년대 중반 중세 유럽에서 유행해 7500만~2억 명의 인구를 죽음으로 몰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