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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름한칠면조122
갸름한칠면조12223.06.25

조선시대 왕들을 견제했던 기관이나 정책은?

안녕하세요?

뭐든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조선시대 무소불위의 왕이지만 의외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생활에서도 제약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세자시절에도 꼬박꼬박 학문을 닦아야했구요.

그럼 조선시대에 왕의 권위를 견제했던 기관이나 정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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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의 권위를 견재하고

    여론을 논하는 기관으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이 업무를 담당

    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왕이 최고이지만, 그래도 한사람이 너무 마음대로 하면 정치가 안되기 때문에 왕의 권위를 갼제하는 기관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의정부가 있었는데, 국가의 정책을 심의하고 왕의 권환을 좀 제한하거나 다른 정치인들의 의견도 반영하곤 했습니다.

    승정원도 왕을 대변하는 일을 수행했는데, 정치를 보조하면서 어느정도 견제를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정책으로는 도론제도라고 도론이라는 직위를 갖는 사람이 왕의 권위를 대변했는데, 왕과 가까운 사람을 임명했지만 바른말로 왕의 정책을 반대할수 도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왕권을 견제하던 관청으로 일명 삼사라 불리던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의 언론기관의 역할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언론삼사(言論三司)라고도 하였다. 사헌부는 백관에 대한 감찰·탄핵 및 정치에 대한 언론을,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과 정치 일반에 대한 언론을 담당하는 언관(言官)으로서, 일찍이 이 두 기관의 관원을 대간(臺諫)이라 불렀고, 양사(兩司) 또는 언론양사라고 하였다.


    홍문관은 궁중의 서적과 문한(文翰)을 관장하였고, 경연관(經筵官)으로서 왕의 학문적·정치적 고문에 응하는 학술적인 직무를 담당하였으며, 세조대에 집현전이 없어진 뒤 그 기능을 계승한 기관이었다.


    1438년(세종 20) 이후 집현전은 언관으로서 구실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집현전의 기능을 계승한 홍문관도 언관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언론양사인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언론삼사로 칭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 기관은 독자적으로도 언론을 행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양사가 합의하여 양사합계(兩司合啓)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홍문관도 합세하여 삼사합계로 국왕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끈질긴 언론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들의 언론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삼사의 관원들이 일제히 대궐 문앞에 부복하여 국왕의 허락을 강청하는 합사복합(合司伏閤)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언론이 제대로 기능할 때는 왕권이나 신권의 전제(專制)를 막을 수 있었으나, 삼사의 언론이 일정한 세력에 의하여 이용될 때는 혼란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