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합 캠퍼스 구상은 1960년부터 제기되었는데 미국 대학과 체결한 계약에 의해 추려진 실태 조사단이 분산화된 캠퍼스 때문에 시설 중첩과 교육 기회 제한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고 그 후 캠퍼스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종합 5개년 계획안이 꾸려지나 예산부족과 단과대학간의 갈등에 의해 실패하고, 1968년 종합 10개년 계획안이 수립되면서 당시 메인 캠퍼스 부지로 공릉동, 수원시, 안양읍 비산리, 태릉 등이 있었습니다.
다만 태릉은 협소한 부지, 교통문제, 육군사관학교와의 갈등 우려, 부동산 투기으로 인한 예산 부족등의 이유로 취소, 결국 1970년 박정희대통령에 의해 관악산 기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는 종로, 청량리 등 단과대별로 서울 시내 여러곳에 있었고 동숭동 캠퍼스가 서울 도심에 위치해 학생운동 통제가 어려웠는데 학생운동 진압을 손쉽게 하기 위해 시내에서 먼 장소 한군데로 몰아넣었다는 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