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관악산 밑으로 이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울대학교가 예전에는 혜화동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언제 어떤 시기에 어떤 일을 계기로 지금의 관악산 자락으로 서울대가 이전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합 캠퍼스 구상은 1960년부터 제기되었는데 미국 대학과 체결한 계약에 의해 추려진 실태 조사단이 분산화된 캠퍼스 때문에 시설 중첩과 교육 기회 제한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고 그 후 캠퍼스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종합 5개년 계획안이 꾸려지나 예산부족과 단과대학간의 갈등에 의해 실패하고, 1968년 종합 10개년 계획안이 수립되면서 당시 메인 캠퍼스 부지로 공릉동, 수원시, 안양읍 비산리, 태릉 등이 있었습니다.
다만 태릉은 협소한 부지, 교통문제, 육군사관학교와의 갈등 우려, 부동산 투기으로 인한 예산 부족등의 이유로 취소, 결국 1970년 박정희대통령에 의해 관악산 기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는 종로, 청량리 등 단과대별로 서울 시내 여러곳에 있었고 동숭동 캠퍼스가 서울 도심에 위치해 학생운동 통제가 어려웠는데 학생운동 진압을 손쉽게 하기 위해 시내에서 먼 장소 한군데로 몰아넣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캠퍼스 이전과 종합화(1976~1985년)=1975년 서울대는 관악산 기슭으로 캠퍼스를 옮기면서 거대한 변화를 맞는다. 서울 동숭동·정릉, 수원 등에 흩어져있던 단과대학들이 하나의 공간에 모이면서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캠퍼스의 지리적, 공간적 통합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나라에 근대 대학시스템이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문리과대학이 인문과학·사회과학·자연과학으로 나눠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학문에 '과학'적인 시스템이 도입됐다. 대학 내부에서는 학문의 실용성이 강조되고 사회에서는 산업화에 따른 기능적인 인재를 필요로 했다. 이 시기에 서울대는 대학원 체제를 본격적으로 갖추고 학위를 엄격하게 주는 미국식 대학교육으로 전환되어 갔다. 이러한 서울대의 움직임은 다른 대학으로 전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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