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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4

조선시대는 신분사회였는데 양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분이 되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시대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눠지는 신분사회였는데 이중에서 양반 신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누어졌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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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관료가 되는 것이 양반이 되는 기본 조건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부터 양반층이 확대되어 모든 양반층이 4조(祖) 내에 관료인 조상을 가질 수 없는 경우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양반이 되는 덕목이 유교 교양·관직 이외에 도덕이 포함되었다.

    박지원(朴趾源)의 <양반전>에 “글을 읽는 사람을 사(士)라 하고, 벼슬하는 사람을 대부(大夫)라 하며, 덕이 있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한다.”라고 한 내용이 그것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도덕 정치도 이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며, 조선 후기에 유림이라는 말이 쓰인 것도 이에서 연유한다.

    유림은 실제 정무에는 관계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여론을 형성하여 정치에 막중한 영향을 미쳤다. 재야에 있는 산림(山林)이 여론을 움직이는 핵심이 되었다. 산림은 고려의 국사(國師)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유림들의 여론 정치가 실시된 셈이다. 이들은 대외 정치나 이데올로기 확립, 권력의 추이에 따라 집단으로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등이 그 예이다.

    양반 개념은 한말·일제시대에 이르러 크게 변화하였다. 조선 후기의 양반의 수는 공명첩(空名帖)·관직매매·족보위조 등을 통하여 극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양반 중에는 문벌 가문이 있는가 하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양반임을 모칭(冒稱)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리하여 같은 양반 중에는 문묘에 종사된 대현(大賢)이나 종묘 배향공신(配享功臣)을 배출한 국반(國班) 및 대가(大家)·세가(世家) 이외에 도반(道班)·향반(鄕班)·토반(土班)·잔반(殘班) 등의 구분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벌열(閥閱)이 아닌 미천한 양반은 양반으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말에 이르러 전통적인 신분 체제가 붕괴되면서 더욱 심해져서, 양반이라는 칭호 마저 ‘이양반’, ‘저양반’ 하는 대인칭(對人稱)으로 격하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대인칭으로서의 양반 칭호는 양반의 본래의 개념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반 [兩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유성 전문가blue-check
    조유성 전문가23.05.24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양반은 '동반(문반)'과 '서반(무반)'으로 구분되었고, 이 중 동반이 더 지위가 높았으며 최대 정1품(대광보국숭록대부)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반면 서반은 최대 정3품(절충장군)까지만 오를 수 있었음이 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에 대한 구체적인 계층 구분은 없었지만 양반 자격을 박탈 당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조선 초기에는 위로 3대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합니다. 이를 4대 무현관(四代無顯官)이라고 하는데, 조선 초기 양반의 비율이 적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평민이라도 과거에 합격하면 양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4대 문현관을 무시하고 조상 중에 벼슬을 지낸 관리가 있으면 양반으로 불렸고, 스스로도 양반으로 지칭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양반의 비율이 커졌고, 조선 말기에는 족보 매매도 있었기 때문에 양반을 지칭하는 사람이 더 늘게 된 것 입니다.


  • 조선시대의 양반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나누어졌습니다:

    1. 관직 양반 (관양반): 국가 관리에 관여하는 고위 관리들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주요한 관직을 맡았습니다. 사대부, 중관, 소관, 군정 등의 관직이 포함되었습니다.

    2. 무과 양반 (무과양반): 고려시대의 시험제도에서 비롯된 양반 계급으로, 성적 우수자들이 진학하게 되는 무과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임용되었습니다. 문과와 행정 관련 관직을 맡았으며, 예술, 문학, 교육 등에서도 활동하였습니다.

    3. 무과 기생 양반 (기생양반): 궁중에서 여성 관리와 예술 활동 등을 맡았으며, 예술적인 재능과 미인으로 인정받은 여성들이 선출되어 궁중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양반 계급은 고려시대의 기틀을 이어받아 조선시대에도 유지되었으며, 양반 신분은 출신과 교육, 재능, 가문의 성과 등을 기준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들은 특권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조선시대 사회의 최상위 계층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양반 계급 내에도 세분화된 등급이 존재하였고, 상평, 중평, 하평으로 구분되어 지위와 권력의 차이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