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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3.24

1592~1598년까지 7년동안 계속 된 임진왜란을 다른 한편으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제목그대로, 1592년부터~1598년까지 7년동안

계속 된 임진왜란을 다른 한편으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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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이 이르는 기간 동안 왜병들은 수많은 도공과 도자기를 약탈했습니다. 그들이 특히 눈에 불을켜고 가져간 것은 흔히 '막사발'이라 불리는 서민들의 생활도자기였습니다.

    막사발은 말 그대로 흙을 뭉텅 떼어서 대충 빚어 유약통에 텀벙 담갔다가 그냥 꺼낸 사발이며, 새것이었을때는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쓰이고 낡고 손때 묻으면 막걸리잔으로 쓰던 그릇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에 널리고 널린 흔한 물건이었습니다.

    물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의 도자기,식기 제작기술은 너무도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고급 분청사기는 고사하고 조선에서는 개나 소나 다 사용하는 막사발 조차도 일본에선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 막사발은 일본으로 건너가 희대의 예술품 대접을 받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예야스는 이 막사발에 일본말로 이도차

    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귀한 찻잔으로 썼다고합니다.이렇게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한반도로부터 많은 자원을 가지고 갔습니다.

    특히 도자기는 물론 도공도 데려갔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도자기를 부러워했기 때문에 도공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며

    문화전쟁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일본의 어떤 섬에는 임진왜란 당시 끌려가 자기를 만들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고 그 후손들이 아직도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기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도자기에 흠뻑 빠졌던 도자기

    광(狂)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의 ‘도자기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도공(陶工)들을 붙잡아 오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 출신의

    다이묘(大名)들은, 앞을 다투어

    도공들을 일본으로 연행하여 갔다.

    그 기술이 사쓰마 야키(薩摩燒),

    아리타(有田) 야키, 하기(萩) 야키,

    다카도리(高取) 야키 등의 새로운

    터전이 되어 오늘날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이끌고 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정치적인 야심과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일어난 전쟁으로, 이전의 조선과 일본 사이의 교류가 적었던 상태에서 갑자기 침략을 일으켰기 때문에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왕래가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은 완전한 놀람과 충격을 조선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은 처음에는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일본군의 성공적인 전략과 무기력한 왕정의 대응으로 점차 전쟁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군이 침략을 할 때에는 조선의 군사 전략을 예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조선 군대는 일본군과는 달리 도시 전투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공세에 대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자기 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조선이 무기력하게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도자기를 깨뜨리는 듯한 모습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자기 선진국이었던 조선에서 도자기 문화가 후퇴하는 일이 있었는데 뛰어난 도자기 기술자들을 일본에 모조리 빼앗기고 병자호란까지 닥쳐 도자기에 신경쓸수가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의 도자기 기술을 서로 뒤바꿔 놓아 사람들은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도 불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대륙세력이 해양으로 진출하고 또한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량적 위치에 있기때문에 수차례의 외침을 당해왔습니다.(391회 비공식적인 것까지 포함하면 1000여 차례) 임진왜란 역시 명나라 침략을 위해 정한론을 내세워서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일명 도자기 전쟁일고도 불리는 것은 강진과 무안 등 서남해안에 도요지가 발달했고 우수한 도공들이 아름답고 우수한 도자기를 만들어왔는데 그런 도공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도자기와 찻잔을 만들어 영국 등에 수출하여 명성을 드높였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한도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대규모의 일제 침략전쟁으로,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군사 조달용으로 도자기 생산에 주력하였기 때문에 "도자기 전쟁"이라는 별칭이 부여되었습니다. 군사·병참대 등에서 청나라와 함께 도자기 제작을 위해 병사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청나라 병사들이 전사한 도자기가 이후 추잡한 재료 대용품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청나라는 도자기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 참전을 결정하였고, 귀족층과 백성층 모두가 전통 문화와 풍속을 보호하기 위해 도자기 생산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당시에 일본에도 도자기 기술은 있었지만 조선에 비하여 보 잘 것 없었지요. 그래서 정유재란

    때는 조선을 점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명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항복을 받아 내기 위해서 주민들을 학살하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납치하였는데 그중에 한부류가 도공이었습니다. 도자기 도공들을 납치하여 일본의 낙후된 도자기 산업을 이끌었고

    이는 일본의 주요 수출품이 됩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일본인들 입장에서 도자기 기술을 빼앗아온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