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비둘기
비둘기23.02.22

임진왜란을 다른표현으로 도자기 전쟁이라표현하던데 왜 그런거죠?

16세기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공하여 무수한 피해를 입힌 전쟁이 임진왜란인데 이 임진왜란을 다른표현으로 도자기전쟁이라고도 부른다고 봤습니다. 왜 그렇게 부르는건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1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은 당시 조선에 비하여 도예기술이 우리나라보다 뒷쳐저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조선의 각종 도자기와 수많은 도예가들을 잡아가서 자국의 도예가들에게 전수시켜주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도자기 중흥을 이끌어내준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유는 많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가 도자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부대 편성에는 '공예부'라는 특수부대가 있었는데,
    조선의 도자기들을 수거하는 부대로써 가장 중요한 부대였다고 합니다.
    조선인들이 개밥그릇으로 사용하던 이 빠진 막사발부터

    아녀자들이 사용하는 요강까지
    자기로 만들어진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회수해갔다고 합니다.

    당시 도자기를 구워낼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 뿐이었다고 합니다.


  • 일본은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불렀다.

    당시 도자기기술은 엄청 중요하고 대표적인 기술이였기 때문이다.도자기는 일본의 주요 수출품으로써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었던 물품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일본은 임진왜란을 달리 말하여 도자기전쟁 이라고도 부릅니다. 당시 도자기기술은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기술과도 같은 것 이었습니다. 당시 서양과교역 하고 있던 일본은 서양인이 좋아하는 도자기를 이용해 막대한 차익을 남겼습니다.다시말해서 도자기는 일본의 주요 수출품으로써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었던 물품이었던 것 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문가들과 지식인들이 판단하기따라 다르지만 도자기가 탐이나서 침공한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우리나라 도공들을 많이 끌고 갔지만 도자기는 하나의 구실이었고 우리나라를 발판삼아 대륙을 진출할수 있으니까 섬나라에서 욕심을 낸것이 아닐까 합니다.

    선조들이 나라를 지켜주시어 너무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당시 한국에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전에는 임진년에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임진전쟁'이라고 불렸으나, 후에는 이 전쟁이 한국의 전통적인 도자기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도자기 전쟁'이라는 표현이 생겨났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에 전통적인 토기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쟁 중에는 이러한 기술을 악용하여 한국의 유명한 도자기 제작지역들을 압수하고, 일본으로 운반해 가는 등의 압제를 가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의 도자기문화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도자기 전쟁'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부대편성에는 공예부 라는 특수부대가 있었는데 조선의 도자기들을 수거하는 부대로 가장 중요한 부대였다고 합니다.

    당시 자기를 구워낼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중국과 조선뿐이었고 소박한 미를 추구하는 일본의 정신에 화려한 중국의 도자기는 맞지 않아, 조선의 백자에 열광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자기 뿐 아니라 도공들마저 눈에 불을 켜고 끌고 갔고 끌고간 도공들에게 무사라는 지위까지 내리며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힘썼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일제 임진왜란 일제 시대 때 많은 도공 기술자를 일본으로 납치해갔기 때문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도자기 전쟁"이란 표현은 일본의 인조시대인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에서의 사건 중 하나인 "천안산성 전투"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조선측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던 중, 천안산성의 도자기들이 일본군의 포격으로 부서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도자기는 조선시대에서 중요한 식기였기 때문에, 이 도자기들이 부서지는 모습을 "도자기 전쟁"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임진왜란 전체를 비유적으로 "도자기 전쟁"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임진왜란 중에 일어난 각종 전투와 전란 상황에서 많은 조선의 문화재나 유물 등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비평적인 시각에서, "도자기 전쟁"이라는 표현은 임진왜란에서 일어난 조선의 문화적 손실과 파괴의 크기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에서 조선의 도자기수준을 높게 평가하였고 전쟁으로 많은 기술자들이 끌려갔지만 그 중 도자기기술자 즉 도공을 최우선으로 하여 데리고 갔습니다. 하여 일본 도자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삼평이 대표적인 인물이자 사례입니다. 그래서 일본 도자기제작 기술도 높아졌기에 도자기 전쟁이라 부를만 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여.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도자기에 흠뻑 빠졌던 도자기 광(狂)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선의 ‘도자기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도공(陶工)들을 붙잡아 오도록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 출신의 다이묘(大名)들은, 앞을 다투어 도공들을 일본으로 연행하여 갔다고 하지요. 그 기술이 사쓰마 야키(薩摩燒), 아리타(有田) 야키, 하기(萩) 야키, 다카도리(高取) 야키 등의 새로운 터전이 되어 오늘날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이끌고 있다.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침략 전쟁에는 실패하였지만, 조선의 도공을 수 만 명이나 일본에 납치하여 ‘세계적인 일본의 요업(窯業)’이라는 도자기 산업을 도입하고, 부흥시킨 장본인이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