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미술 이미지
미술학문
미술 이미지
미술학문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23.04.12

솟대의 유래는 무엇이며 왜? 새의 형상을 사용할까요?

시골마을어귀에 높게 세워져있는

솟대는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같이 긴 막대기 끝에는

새의 모양을 한 조형물이 올려져 있는데

왜? 굳이 새일까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한(三韓)시대에 신을 모시던 장소인 소도(蘇塗)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소도에 세우는 솟대[立木]가 그것이며, 소도라는 발음 자체도 솟대의 음이 변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농가에서 섣달 무렵에 새해의 풍년을 바라는 뜻에서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장대에 높이 달아맵니다. 이 볏가릿대[禾竿]를 넓은 마당에 세워 두고 정월 보름날 마을 사람들이 농악을 벌이는데, 이렇게 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것입니다. 또 민간신앙의 상징물인 장승 옆에 장대를 세우고 장대 끝에 새를 나무로 깎아서 달기도 하였습니다.

    이 밖에 경축의 의미로는 옛날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위해 마을 입구에 주홍색을 칠한 장대를 세우고, 끝에 청색을 칠한 용을 만들어 붙이는데 이것도 솟대라고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솟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안녕하세요. 이효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솟대의 모양이나 의미는 지방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주로 새나 오리의 모양인데 물고기를 물고있는 오리의 모습이나, 오리알이 그자체로 풍요로움과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리는 하늘, 땅 물 3계를 넘나드는 동물로서, 종교적/우주적 존재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솟대는 새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 마을 입구에 세웠던것으로 삼한시대

    소도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라도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솟대가 신목(神木)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하였다. 즉, 처음에는 생목을 잘라서 신간으로 삼았으나 차츰 나뭇가지를 버리고 장대만을 신간으로 삼게 되었다고 추측하였다. 이러한 신간숭배 민속은 한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습속이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솟대는 일반적으로 새 모양으로 조각된 우리나라 전통 목조 토템 장대입니다. 솟대의 기원은 고대 한국의 샤머니즘 관습에서 비롯됐고, 악귀를 물리치거나 행운을 가져다주고 집이나 밭을 보호하는 부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새 모양은 축복을 가져다주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새의 목에 볍씨가 든 주머니를 매달에 신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풍요를 기원하기도 하고 부리에 물을 상징하는 갈대나 물고기 모양으로 깎은 나무를 물려 화재를 막길 기원하는 등 부적이나 풍수 , 종교적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솟대의 기원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선사시대부터 북방민족들이 새를 숭배하던 풍습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솟대에 세워져 있는 새의 조형물은 실제 새와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솟대는 전통적으로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며, 마을을 지키는 상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를테면, 이 솟대가 마을에 높게 세워져 있음으로써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을을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솟대는 일종의 마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새의 모양을 한 조형물은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새는 전통적으로 자유롭고 비평적인 상징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상징성을 통해 마을의 독립성과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새는 고대로부터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적 표현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예술적인 가치를 높이는 목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