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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7.24

이란이 반미 국가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란이 예전에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였다고 들었는데 핵문제 관련 해외 자산 동결 및 제재를 당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반미 국가가 된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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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양국관계는 2000년대 들어 아프간 탈레반 축출시 협력 구축 등 일부 개선의 조짐이 있었으나, 부시(George W. Bush) 미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교서에서 이란을 북한 ·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다시 악화일로를 걷게됩니다.
    - 2002년말 이란 반정부 단체에 의해 이란의 비밀 핵프로그램이 폭로됨으로써 양자관계는 보다 악화되었으며, 미국은 대이란 경제제재를 시행중입니다.

    *아마디네자드 취임 이후 핵문제를 둘러싼 미-이란 관계는 더욱 냉각되었으나, 로하니 정부 출범 및 2015년 핵 합의 타결을 계기로 현재 관계 개선의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 2016.1.16. JCPOA 이행일 선언을 앞두고 이란 영해를 침범한 미국 해병 10명 석방 및 상호 수감자 교환 석방 등 양국간 우호적 분위기 조성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란과 미국은 1979년도에 이란 회교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친미동맹으로서 중동의 전초기지였습니다. 팔레비 왕조의 독재적인 정치 속에서 이란 국민들이 반 팔레위 데모가 발발했으며 수 천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란은 종교 지도자인 호메이니가 집권하고 이후 반미 정책이 진행됩니다.

    2002년에 이란이 핵을 핵무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강대국들의 개입 및 제제가 지속되다가 2015년에 이르러서는 이란이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이란의 발전을 돕는 협약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에 이 협정을 탈퇴하면서 이란과 미국과의 반목의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은 최근 전면전의 위기까지 갔었으며, 바이든 정권이 들어와서는 다시 이란과의 헙정과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이전 이란에는 친미 왕정 팔라비 왕조가 있었고 ,팔라비 왕조 하에 미국과 영국인들은 특권층처럼 살았고 이는 국민들에게 외세에 대한 반감을 일으켰습니다. 팔라비 왕조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자 독재에 항거한 시민들은 1979년 이란 혁명을 일으켜 팔라비 왕조를 붕괴시키는데 이때 미국에서 팔라비 왕조의 황제 레자 샤를 받아주자 이란 국민들은 분노,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하게 되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이후 이란 내에서는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이란은 반미 국가로 돌아서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가장 가까운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혁명 직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마지막 왕 팔레비 에게 “이란은 중동이라는 혼돈의 바다에 떠 있는 유일한 안정의 섬이다”라고 상찬했다고 합니다. 첫 악연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에서 시작되었는데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은 긴장했다고 합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아랍 왕정을 강타했던 군부 쿠데타로 이집트·이라크·시리아 등에서 사회주의 공화정이 들어선 기억 때문인데 이들 아랍 공화국은 반미·반서구 경향이 강했고 미국이 구상하는 대소련 봉쇄의 냉전 틀이 흔들렸던 기억이 이란에서 되살아난 것입니다. 두 번째 악연은 레바논에서 이어지는데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과 미국 해병대 피습 사건의 기억입니다. 레바논 내전의 혼돈이 지속되던 1983년 4월19일, 베이루트의 미국 대사관이 차량 폭탄 테러를 당하고 미국인 17명 등 6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같은 해 10월23일에는 베이루트 주둔 미국 해병대 기지에서 차량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미군 241명이 숨지고 가해 조직이 헤즈볼라로 밝혀지면서 미국의 반이란 정서가 한층 악화됩니다. 세 번째 근원은 살만 루슈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 출신 소설가 루슈디가 1988년 출판한 〈악마의 시〉는 이슬람권을 격동케 했는데 선지자 무함마드와 경전 코란을 모독하는 비유를 담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적잖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고 이란의 호메이니는 루슈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합니다. 현상금과 함께 암살 지령까지 하달했다고 합니다, 호메이니 사후 암살 지령이 풀리고 공식적으로 이란은 루슈디 사면을 선언했고 여전히 이란 일부 종교단체는 루슈디를 쫓고 있기도 하고 작년에 피습을 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