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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시라소니109
견실한시라소니10923.07.22

고려시대에 문신과 무신의 차별이 심했나요?

안녕하세요

역사를 보면 문신도 급수가 있고

무신도 급수가 있는데 동일한 급수이거나

문신이 급수가 낮아도 무신을 무시하거나

차별을 하였는지 궁금해요

무신정변이 일어난 계가기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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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신들이 문신보다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조선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럼에도 고려때 무신정변이 일어난 것은 무신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의종은 유흥을 즐겼는데요 유흥을 위해 개경 주변의 사찰들을 돌아 다니며 유흥을 즐겼습니다. 이때마다 무신들이 경호를 하며 격무에 시달렸고, 문신들의 행패도 심했는데 그중에 김돈중이란 자는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태우며 모욕했는데, 이제 정중부가 항의 하자 김돈중은 아버지 김부식의 권력으로 오히려 정중부를 처벌 하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무신에 대한 왕과 문신들의 대우가 극에 달하여 마침내 정중부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단순히 처우가 조금 못하다고 일어났던 혁명이 아니라 섞을 대로 섞은 왕과 문신들의 행태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정변으로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 당시 군 지휘권을 문신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싸우는 건 무신이고 지휘하는 사람은 문신이라서 무신들이 약간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 의종이 무신을 중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정중부, 이의방 등이 있습니다. 무신 세력은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을 통해 공을 세우면서 점점 확장했습니다. 이렇게 세력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정중부 수염을 불태우거나 이소응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무신정변이 발생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는 원칙적으로 무반은 문반과 함께 양반으로서 지배층을 이루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문반과 무반의 지위는 법제적, 현실적으로 동등하지 않았다. 문반이 종1품의 관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반면, 무반직의 최고위는 정3품의 상장군이었다. 강감찬(姜邯贊)이나 윤관(尹瓘) 등과 같은 유명한 군사지휘관들도 모두 문관이었다. 무반은 병권은 물론 군사지휘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고려의 과거제에서는 문과만이 시행되었을 뿐 무과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반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관직생활을 시작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따라서 무신들 가운데에는 항오(行伍)에서 출세하게 된 미천한 자들이 많았던 까닭에 무반 전체가 천시를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급군인들의 불만은 훨씬 더하였다. 원래 고려의 군인들은 군인전(軍人田)을 지급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가에서 나눠줄 토지가 부족해지자 군인전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군인들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군인들은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온갖 잡역에 동원되어 혹사당하면서 문신 위주의 정권에 대한 불만을 키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