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시작한 것으로 김일성이 각 부대에 공격 개시를 명령하며 사용한 암호가 폭풍이어서 폭풍 작전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작전명령에 따라 10개 사단 20만 명에 이르는 북한 군이 서해의 옹진반도에서 동해의 양양에 이르는 38선의 11개 지역에서 동시에 기습적으로 남침을 해오면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어 분단이 현실화하자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곧바로 군사력 증강에 나서며 남침 준비에 착수, 1949년 3월 소련과 경제문화협정을 체결해 무기를 지원받았으며 8개 전방사단과 8개예비사단 규모의 군사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병력을 증강시켰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소련의 스탈린에게 남침 계획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나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이 확대 될 것을 우려한 스탈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49년 6월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10월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의 내전에서 승리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소련의 태도도 점차 변화하는데 1950년 1월 미국의 국무장관인 애치슨이 한반도를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제외하자 스탈린은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에게 중국의 지원 약속을 받는 것을 전제로 남침을 승인해주게 됩니다.
소련의 승인을 받은 김일성 정권은 1950년 4월부터 바실리예프 중장이 이끈 소련의 군사고문단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며 남침을 위한 준비를 본격화했고 5월 김일성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에게서 미국이 참전하면 병력을 파견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