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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얀굴뚝새243
뽀얀굴뚝새24324.03.22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경위가 뭔지 알 수 있나요?

남편과 도끼만행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원인을 놓고

누구의 잘못으로 이러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이야기하다가 결국 원인을 모르는채로 종결이 됐네요.

북한측의 주장은 미군 측이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고 경비병들이 제지하러

나섰는데 갑자기 미군이 자신들에게 도끼를 던졌다고 하던데

진짜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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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1976년 8월 6일 한국인 노무단(KSC) 노무자 6명과 유엔사 경비병 4명이 나무를 베기 위하여 현장에 갔을 때, 북한 경비병이 그들의 목적을 물은 뒤에 나무를 그대로 두고 가라고 위협적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들은 철수했고 8월 18일 오전 10시 30분 경비병력 10명, 노무자 5명으로 구성된 유엔사 작업반이 나무 주변에 도착해서 가지치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몇 분 후, 북한군 장교 2명과 병사 9명이 트럭을 타고 현장에 도착했고 그 가운데 북한군 중위인 박철이 작업을 계속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위협하며 경고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엔사 작업반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11시 경 10여 명의 북한군 경비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하였고, 북한군 병력은 30여 명으로 늘어났고 이때 박철은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결국 미류나무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유엔사 경비병들을 근거리에 있던 북한 초병들이 도끼 및 흉기로 무자비하게 공격한 사건으로 미군 대위 보니파스 등 2명이 숨지고 한국인 노무자들이 다친 사건입니다.


  • 당시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처에서 미 육군 제2사단 소속 병장 2명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이 작업이 휴전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8월 18일 오전 11시경, 북한군 30여 명이 도끼, 곡괭이 등을 갖고 작업 중인 유엔군 경비병들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공격으로 미 육군 장교 2명이 사망하고, 한국군 병장 1명과 미 육군 병장 5명 등 총 9명이 부상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는 유엔군과 협의 없이 북한이 만든 5개의 초소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유엔군 관할의 제3초소는 북한군 초소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특히 제3초소와 제5초소 사이에 있던 미루나무 한 그루가 무성하게 자라면서 양 초소의 시야를 가리고 있어 유엔군은 미루나무를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주한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조지 보니파스 대위를 비롯한 소대장 마크 토머스 배럿 중위 등 2명과 부사관과 병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 1명과 부사관과 병 4명 등 1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북한군 병력 30여 명이 몰려와 작업을 방해하였고 이 과정에서 북한군 박철 중위가 “ 전부 죽여!”라고 명령하며 미군을 공격하였습니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해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하고 경비병 9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이후 미국은 데프콘3를 발령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출동 시키는 등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이에 북한은 김일성이 직접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함으로써 사건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8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휘 감독하던 미군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이는 유엔군 3초소가 조선인민군 3개 초소에 둘러싸여 있어서 5초소에서 3초소를 지켜줘야 하는 상황에서 3초소와 5초소 사이의 미류나무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서 가지치기를 하던 중 조선인민군 수십명이 갑자기 나타나 도끼로 미군장교를 죽이고 인부들을 협박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미국 등 유엔군은 준전시상태에 돌입했으나 북한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사건을 주동한 박철 등을 처벌한다고 하여 일딘락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