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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백로2723.01.13

판문점도끼 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으로 미 장군 2명이 북한군에게 살해 당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판문점 도끼 사건이 일어난 원인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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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문점도끼사건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벌목작업을 지도하던 미국인 UN군 장교 2명이 조선인민군 병력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당시 판문점은 물리적인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경비구역이었는데, 유엔군 측 3초소는 조선인민군 육군 초소3개소에 포위당한 지점에서 항상 위협에 노출되어있었습니다.

    따라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5초소 측에서 3초소를 지켜보고 있어야 했는데 미루나무가 5초소의 시야를 방해하여 8월 3일 UN군 경비대 작업반은 3초소의 안전 도모를 위해 미루나무를 자를 것을 권고합니다.

    8월6일 한국인 노무자 4명과 UN군 병사 4명이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했는데 북한군이 이의를 제기하며 작업을 중단시켰으나 경비대는 8월 18일 절단이 아닌 가지치기를 하기로 결정하고 오전 10시30분 한국인 노무자 5명을 동원하여 가지치기를 하였으며 경비대 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 소대장 마크 배럿 중위 등 UN장교 2명, 병사4명 , 국군장교 1명, 병사4명 등 총 11명의 병사들이 작업 감독을 합니다.

    북한군 군관2명과 하전사 8명이 나타나 재항의를 하자 UN군은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중이라 설명하고, 현장에 있던 북한군도 수등하여 노무자들에게 가지를 잘 치는 법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10시 47분~50분 사이 박철 중위 등 북한군 장교 2명이 15명의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나타나 박철 중위는 보니파그 대위에게 작업 중단을 요구합니다.

    보니파스 대위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 지시했고 11시30분 경 북한군20여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도착하였으며 박철 중위가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지만 보니파스 대위는 무시합니다.

    박철 중위가 소매를 걷고 차고있는 손목시계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신호를 보내자 북한군들은 일제히 소매를 걷고, 박철 중위가 죽여! 라고 소리치자 북한군들은 트럭에 싣고 온 둔기와 한국인 노무자들이 사용하던 도끼를 이용해 기습적으로 폭행을 가합니다.

    보니파스 대위가 북한군의 구타에 가장 먼저 쓰러지고, 북한군 5명이 쓰러진 그들에게 달려들어 도끼로 머리를 찍어 살해했으며 마크 배럿 중위는 발견 당시에는 살아있었지만 이송 중 사망하였습니다.

    나머지 병사들도 유엔군 병사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부상당했습니다.

    아보니파스대위는 사건 당일 한국에서의 근무가 3일 남았고, 후임 중대장 역시 JSA에 투입되어 인수인계 과정중으로 가지치기 작업 감독 지휘는 후임 중대장에게 인계할 수 있는 업무였으며 배럿 중위는 JSA에 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입니다.

    박병엽 전 조선로동상 대외조사부 부부장의 증언록에 의하면 이 사건은 당시 북한 주석인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의 지시였다고 하며 당시 북한은 김정일이 후계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으로 김정일이 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당시 UN군이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고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주라. 단, 남조선 노무자들은 건드리거나 총을 쓰지말고 미제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병엽 전 조선로동당 대외조사부 부부장의 증언록에 의하면 이 사건은 당시 북한 주석인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의 지시였다고 합니다. 당시 북한은 김정일이 후계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김정일이 전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당시 UN군이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고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주라. 단, 남조선 노무자들은 건드리거나 총을 쓰지 말고 미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은 1976년 8월 18일 오전 11시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사천교(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방에서 미루나무가치지기 작업을 하던 유엔사 경비병들을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 및 흉기로 구타 살해한 사건 입니다.

    이사관의 핵심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976년당시에 판문점을

    주위에 두고

    남북의 감시 초소들이 대립되어

    있었는데 가운데 서있는 미루나무가

    경계에 지장을 초래해서 미군이

    자르려고 하다가 북한군의 개입으로

    생긴 사건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한의 판문점도끼 만행사건은 1976.8.18 오전11시에 공동경비구역내(JSA)에 미군초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를 제거하기 위해 미군장교와 한국노무자들의 도끼로 나무제거 작업을 하던중 갑작기 수십명의 북한군 병사들이 노무자들에 달려들어 도끼를 빼앗아 지휘감독하는 미군장교2명을 잔인하게 살해를 한 사건 입니다.


    사건이후 제2에 한국전쟁이 일어 날 위기가 있었고, 공동경비 구역내에 유엔군과 북한이 자유로히 왕래를 하는 구역에 남과북이 경계선을 긋고 넘어갈수 없이 확고히 경계선을 그어져 있습니다.북한은 우리의 강력한 군사력을 알기에 한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군이 있기에 우리에게 입에 담지 못하는 말을 하고 미사일을 수십차례발사를 하면서도 도발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