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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5.26

스페인의 함대가 유명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스페인은 옛 시절부터 해양전투로 전세계적인 강국이었는데요. 스페인도 해안가와 접해있는 국가이긴 하지만

유독해상군이 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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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전협정이 만료되기 전에, 스페인인들은 재기할 길을 찾아내 네덜란드를 격퇴해야만 했다. 올리바레스 공작인 돈 가스파르 데 구스만은 자신이 방법을 안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타고난 해상 강국은 아니었으며, 스페인이 지닌 가장 가공할 만한 군사력은 해군이 아니라 육군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올리바레스의 믿음에 따르면, 스페인 육군이 네덜란드인들을 플랑드르에서 고립시킬 수 있었고, 스페인 사략선은 해안을 봉쇄하고 영국 해협을 통한 무역을 차단할 수 있었으므로, 스페인군이 해안선을 따라 공격하기도 전에 네덜란드 경제를 붕괴시킬 수 있었다.

    스페인은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공격으로부터 끝없는 해로(海路)와 이리저리로 확대되는 식민지를 방어하기 위해 세계 도처에 제한된 규모라도 해군력을 확산시켜 놓아야만 했다. 스페인의 주요 함대는 아르마다 델 마르 오세아노, 즉 대서양 함대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모든 중요한 해로를 방어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신 스페인(멕시코)의 은이 없었다면, 스페인의 재정이나 전쟁을 벌일 능력은 붕괴되었을 것이다.

    1620년대 무렵, 1617년에 시작된 뒤늦은 조선 계획에 따라 이 함대에 속한 전함의 수가 46척에 이르렀다. 해군본부 기지가 있는 카디스에는 23척의 배가 입항해 있었고, 갤리온선 18척이 지브롤터에 주둔했다. 스페인은 갤리온선 24척을 건조하는 데 260만 두카를 지출했다. 1638년 무렵, 스페인 해군력은 그 어느 때보다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정전협정이 있든 없든, 네덜란드군은 요리스 판 스페일베르헨 제독 휘하 전함 6척을 타고 케이프 혼을 돌아, 로드리고 데멘도사 제독의 남태평양 함대를 격퇴해 2척을 파괴했다. 칼라오로 도망치면서, 멘도사는 네덜란드 병사들이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에서 약탈을 자행하는 것을 방치했다. 대서양에서 유사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스페인은 호송함대를 재구축했다.

    특히 베라크루스로부터 하바나를 경유해 카디스로, 연례적으로 멕시코의 은을 싣고 항해하는 함대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서인도 제도에서 극성을 부리며 스페인의 수송로를 위협하는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파드리크 데 톨레도 지휘 하에 창설된 순풍함대가 필요에 따라 하바나 혹은 카디스에 주둔했다.

    그러나 1635년에 발발한 프랑스와의 또 다른 전쟁에 가담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두 함대는 격감했다. 이 두 함대 모두 본질적으로 방어용이었으므로, 네덜란드는 발트 국가들과 독점에 가까운 무역을 통해 계속 별 탈 없이 강성해질 수 있었다. 이 무역을 통해 얻는 목재가 없어진다면 네덜란드 전함은 썩어버릴 테고, 이 무역을 통해 얻는 해군 비축물(타르, 피치, 로프, 삼)이 부족해진다면 네덜란드 해군은 악화될 것이었다. 또한 폴란드의 곡물이 없다면 네덜란드 주민들은 굶어죽을 처지였다.

    그러므로 올리바레스는 네덜란드 선박을 먹이로 삼기 위해 리가 혹은 단찌히에 기지를 둔 연합함대를 구축하기 위해 1626년에 폴란드와 협력할 계획을 수립했다. 한편 바이마르나 슈트랄준트에 해군기지를 세우려는 계획이 1630년까지 입안되었으나, 그 무렵 스웨덴이 30년 전쟁에 끼어들면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올리바레스는 고도의 위험성을 놓고 기꺼이 도박을 걸 만큼 강건한 범지구적 전략가였다. 만일 영국 해협을 통해 네덜란드의 서쪽 연결로를 차단할 수 있다면, 이는 발트 생명선이 절단되는 경우만큼이나 네덜란드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이었다. 1621년, 올리바레스가 던커크의 개선과 갤리온선 20척 건조를 위해 2만 두카를 할당했다.

    이 계획은 1636년 1월까지 던커크에 갤리온선 40척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자금과 숙련된 노동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이런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스페인 조선소가 1620년대와 1630년대에 매년 50척을 건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던커크에서 작전을 펴면서 스페인 사략선들은 네덜란드 선박을 상대로, 그리고 북해 어장을 놓고, 지속적으로 무거운 통행료를 징수했고 네덜란드인들의 호주머니를 강탈했다. 이는 네덜란드인들의 최대 약점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국주의 스페인 대 네덜란드 (해전의 모든 것, 2010.05.17., 이에인 딕키, 마틴 J. 도헤티, 필리스 J. 제스티스, 크리스터 외르겐센, 롭 S. 라이스, 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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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적함대는 1588년 메디나 시도니아공작의 지휘하에 영국을 상대로 출항했던 스페인의 함대입니다. 옛 스페인어로는 "Grande y Felicísima Armada" 라 하며, 이는 "위대하고 가장 행운이 있는 함대" 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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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드레이크-노리스 원정(Drake-Norris Expedition)때 스페인 본토를 공격해 들어온 대규모 잉글랜드 함대는 스페인 영주들의 지방함대를 맞아 전투에서 그야말로 탈탈 털려버린다. 이때도 잉글랜드 지휘관은 칼레해전 때와 같은 프랜시스 드레이크였는데, 영국군은 11000명 에서 15000명이 전사했고 40척이 침몰 또는 나포되었다. 스페인군은 백병전 등으로 900명이 전사하고 배들은 하나도 침몰되지 않고 멀쩡했다. 드레이크 노리스 원정이 진정한 스페인 해군의 위용을 보여준 셈이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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