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갓크기가 신분을 증명하는 방법이었을까요?
사극을 보게 되면 갓을 많은사람들이 쓰는걸 확인할 수있는데, 상대적으로 신분높은사람들이 갓크기가 큰것같더라구요. 갓크기가 사람들의 신분을 보여주는 증표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갓의 크기는 양반의 재력이 얼마 인가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있고 갓의 크기와 넓이 상관 없이 양반은 갓을 쓰고 평민과 중인 천민은 갓을 쓰면 안됩니다
하층민이 큰 갓을 쓰면 양반들이 끌고가서 매질도 많이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방범대같은 사람들이 양반한테 끌고가던 신분제 사회였기때문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갓의 종류 중에는 양반과 평민 구별 없이 사용한 초립(草笠)이 있다. 이것은 가는 풀이나 대나무를 가늘게 오려서 만들었다. 형태와 소재는 구별이 없었지만, 얼마나 가는 것을 쓰느냐에 따라 양반과 평민을 구별하였다. 양반은 50죽, 평민은 30죽을 썼다) 죽(竹)이란 초립을 만들 때 가늘기를 가늠하는 기준을 말한다. 초립의 형태는 갓과 구별되는데, 초립의 챙은 가장자리가 약간 위로 휘어져 있으며, 머리가 얹히는 부분도 갓과 다르게 매우 좁다. 초립은 조선시대 관례를 마친 소년이 흑립을 쓰기 전까지 주로 썼기 때문에 ‘초립동’이라고도 하였다.
-출처:우리역사넷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모자는 의관 정제를 통해 품격을 완성했던 일종의 문화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신분제의 표본이자 예의이며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패랭이 등은 서민이나 일반 백성들이 쓰고 깃이 넓은 갓은 주로 양반들이 착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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