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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카이
은카이23.08.12

봉선화 물들이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봉선화 물들이기를 하는중에 갑자기 궁금한것이 생겼어요. 봉선화 물들이기의 유래나 역사적인 기록이 있을까요? 많이 궁금합니다. 답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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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풍속은 오행설에 붉은색[赤]이 사귀(邪鬼)를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선화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음력 4월이 되어 꽃이 피게 되면 원하는 빛깔의 봉선화와 함께 잎사귀를 조금 따서 돌이나 그릇에 놓고 백반을 배합하여 찧어서 손톱에 붙인 뒤 헝겊으로 싸고 실로 총총 감아두었다가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날 헝겊을 떼어보면 봉선화꽃의 빛깔이 손톱에 물들어 아름답게 된다고 합니다.

    백반은 착색을 잘 시키며, 조금 섞는 잎사귀는 빛깔을 더 곱게 해줍니다. 화장품이 적었던 옛날에는 봉선화물들이기가 소녀나 여인들의 소박한 미용법이었습니다.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이는 것은 손톱을 아름답게 하려는 여인의 마음과 붉은색이 벽사(辟邪)의 뜻이 있으므로 악귀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민간신앙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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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봉숭아꽃물 들이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올라간갑니다.

    <동국세시기>에는 봉숭아로 손톱에

    물을 들이는 것은 손톱을 아름답게

    하려는 여인의 마음에다, 붉은색이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에서 악귀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민간신앙의 의미도 포함돼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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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아시아에 주로 있던 풍습으로 , 한국기준으로는 고려시대부터 이 풍습이 있었습니다.

    충선왕과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충선왕이 원나라에 끌려갔을 때 공녀 출신 군여가 가야금을 타며 손가락에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는 꿈을 꿨고 그 궁녀를 찾았더니 그가 고려에 살았으며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면서 고려로 돌아올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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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봉선화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온다.고려 충선왕 때였습니다. 충선왕은 몽고에서 보내온 공주보다 다른 여자를 더 사랑한
    다는 이유로 당시 고려를 지배하던 몽고의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충선완은 결국 왕위를 내놓게 되었고, 원나라에 불려가서 살게 됬습니다. 그러던 중 왕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예쁜 소녀가 피 흘리는 손으로 가야금을 타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왕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궁궐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만큼 열 손가락에 하얀 천을 대고 실로 꽁꽁 동여맨 한 소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넌 어찌하여 손가락을 실로 동여매고 있느냐?”그 소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충선왕은 가까이 다가가 소녀의 얼굴을 보니 놀랍
    게도 장님이었습니다
    “예, 저는 충선왕을 섬기는 신하의 딸인데 고려에서 강제로 끌려왔습니다.”소녀의 얘기는 충선왕의 마음을 슬픔으로 물들였습니다.소녀의 아버지는 관직에서 쫓겨났으며 고국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를 한탄하였습니다
    가 눈이 멀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소녀 역시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 눈이 멀었고, 손톱에 봉선화물을 들인 까닭은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소녀는 떠듬떠듬 말했습니다.
    소녀의 얘기를 귀담아 듣던 왕은 큰 감명을 받았다. 이 궁녀는 자기 때문에 화를
    당한 신하의 딸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자기 때문이란 것을 안 충선왕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로 고려에 다시 돌아온 왕은 그 갸륵한 소녀를 불러오려 하였으나 이미 죽
    은 후였습니다. 왕은 소녀의 마음을 기리는 뜻에서 궁궐 안에 많은 봉선화를 심게 하였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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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손톱을 물들이는 데 봉선화를 사용했는지는 역사에 기록이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충선왕 때 손톱에 봉선화를 물들인 궁녀에 대한 전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1000년 이상 된 풍습 이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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