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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무
수리무23.09.25

조선시대에 왕자의 난은 왜 두 번이나 일어 났나요?

이방원이 주도하여 1차왕자의 난이 일어나서 세자를 죽이고 정권을 잡았는데

그 후에 왕자의 난이 한 번 더 일어났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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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위 싸움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을 개국하는데 가장 공이큰 방원은 무지 화가 났죠. 그래서 하륜 이숙번등과 모의해 왕세자 방석을 죽입니다.(제 1차 왕자의 난)

    이렇게 해서 방석이 죽고 화가난 이성계는 둘째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 별궁으로 떠나지요. 그래서 제2대왕인 정종이 탄생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연히 방원이 왕세자가 될 분위기였으나 방원의 형인 방간이 왕이되고 싶은 욕심에 방원을 죽이려고 하면서 다시 싸움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방원이 이기며, 형 방간은 귀양을 갑니다(제 2차 왕자의 난) 그리고 방원은 왕세자가되어 왕위를 물려받아 태종이되죠. 결국 왕자의 난이 두번이나 일어난 까닭은 서로 왕이 되고 싶은 욕심으로 왕위를 두고 다투게되었던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방간은 태조 이성계의 4남으로 후의 태종 이방원보다 바로 위의 형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노리는 야심을 품고있었으나 특출난 능력이 없어 주목받지는 못합니다. 큰 형인 진안대군은 전주 이씨 문중의 장손으로 음서로 벼슬, 둘째형은 아버지 이성계가 현역 장군이었을 때 전장에서 함께 고생해 군인수업을 받았고, 바로 아랫동생은 여말에 과거시험에 급제해 이성계를 기쁘게했으나, 방간만 별 기록이 없는 걸 보면 재주라고 할수있는 건 동북면에서 가병들 데리고 패싸움하는 재주 정도였습니다.

    1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운 박포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이를 노골적으로 뒤에서 떠들다가 열받은 이방원에 의해 귀양, 1차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에게 무릎꿇은 것 말고 딱히 한 일이없는 조준, 김사형이 1등 공신에 올라 있는 반면, 정작 이방원의 측근이자 실질적으로 쿠데타를 주도한 핵심실세들인 이숙번, 민무구, 민무질 등은 2등 공신이었습니다. 이후 조준 등은 원로로서 구색밪추기 1등 공신의 대접은 받지만 이성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박전 이전에 비해 실권은 거의 잃은 반면, 2등 공신 이숙번, 민무구, 민무질 등은 권력의 핵심으로 1등 공신들보다 훨씬 더 강한 권세를 누립니다.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박포는 이방원에게 등을 돌리고 이방원을 쓰러뜨릴만한 세력을 물색하던 중 대권에 노골적으로 야욕을 보인 이방간에게 접근, 박포는 방간을 찾아가 방원이 당신을 죽이려 한다며 꾀를 내었고, 방원에게 위협을 느끼던 방간이 이에 솔깃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으로 고려의 절의파인 정몽주를 죽여 건국에 걸림돌을 없애는 등 공을 세웠지만 세자로 책봉되지 못합니다 이성계가 가장 나이 어린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을 제거하고 둘째형 방과를 정종으로 앉힙니다. 이후 넷째인 방간과 권력다툼으로 방간을 제거하는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정종과 왕비사이에 후사가 없자 하륜 등이 나서서 이방원을 왕세제로 옹립하고 이방원은 정종의 양아들이 되어 3대 태종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