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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9.12

조선시대 때 있던 신분제도는 언제 사라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는 양반 평민 노비 등 신분제도가 있었는데요

이 신분제도는 언제 사라지게 된건가요? 근대 넘어 오면서 사라진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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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신분에 다른 차별 대우는 서서히 완화되었고 수결 대신 손모양을 그려넣은 노비관련문서 마침내 1894년 갑오개혁에서 신분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인 태종 때 국민은 양인과 천인으로 나누어졌으나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계급이 뚜렸해졌습니다. 양반 신분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성취 신분이 아니라 부모에게 물려받는 세습신분이었습니다. 신분 사이의 구분은 엄격했고 신분의 이동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변서 부유해진 백성들이 나라에 돈을 바치거나 양반 직첩을 사서 양반이 되기도 하고 노비들도 돈을 바져 양민이 되기도 하면서 신분 제도가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군조 때 관노비가

    해방되었고 고종 때는 노비의 신분 세습법이 폐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 신분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습니다. 갑오개혁은 조선 후기의 부패한 정치와 사회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추진된 개혁 운동으로, 신분제도 폐지는 그 중 하나였습니다. 갑오개혁으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나뉘었던 신분제도는 모두 폐지되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 신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갑오개혁 당시 신분제도 폐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신분제도는 조선 사회의 전통적인 질서였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많은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또한, 신분제도의 폐지에는 법률, 행정,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시행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갑오개혁을 계기로 조선 사회는 근대적인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신분제도의 폐지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의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신분제도는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의 주도하에 갑오개혁(1894-1896)을 통해서 신분 제도가 공식적으로 사라 지게 됩니다. 공식상 폐지는 되었지만 이후에도 극보수 사상을 가진 양반들 사이에서 여전히 정서적으로 양천을 가리는 성향이 남아있었다가 1905년 을사늑약 떄 완전히 사리 집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폐지는 1894년 갑오경장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폐지 되었다고 힙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형식정으로 사라지나, 일부 수구 성향의 양반층과 고위층들로부터 잔존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며 출신 성분에 상관 없이 전부 새롭게 바뀌면서 완전히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고 마을 전체가 초기화되었으며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촌향도를 하게 되며 계급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며, 산업화 등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암암리에 존재하던 신분제는 명목상으로던 실질적으로던 완벽에 가깝게 소멸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이 과정은 대한제국에 대한 근대화와 정치적 변혁을 반영한 중요한 사회적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에서 주요한 사건과 변화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겠습니다:

    1. 갑오개혁(甲午改革, Gabo Reform): 1894년에 발발한 갑오(甲午)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대한제국 내외에서 혼란과 불안이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대한제국 정부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신분 해체와 개성 대장경(개성대장경, 개경대장경)의 발표: 1894년 11월, 대한제국 내신분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양반(양민)과 중인(중류층)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며,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한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3. 개성 대장경의 발표: 1895년 1월, 개성 대장경(개경 대장경)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불교적인 가르침과 함께 사회적 평등과 인권을 강조하여, 신분 제도의 폐지와 개혁을 뒷받침했습니다.

    4. 대한제국의 멸망: 1897년, 대한제국은 왕정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고종제헌제로 변화했습니다. 이로 인해 대한제국은 제식국으로 승격하고, 불문에도 관료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개혁은 대한제국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되었으며, 신분제도의 폐지는 조선시대의 오랜 전통을 끝내고 현대적인 사회 제도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