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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9

이방간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간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이방간의 생애와 업적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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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단정한낙지284
    단정한낙지28423.05.19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은 신의왕후 한씨의 넷째아들입니다.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은 6남2녀였는데, 진안대군(이방우) 정종(이방과) 익안대군(이방의) 회안대군(이방간) 태종(이방원) 덕안대군(이방연) 경신공주 경선공주 입니다.

    회안대군이던 이방간은 태종 이방원을 질투했었다고 합니다. 문신이었고 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세웠으나, 이후 2차 왕자의 난 때는 박포의 꼬임에 꾀어져 이방원과 등을 돌렸으나 패배하게 됩니다. 이후 죽을때까지 유배를 가게 됐으며 58세에 사망한 인물입니다.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의 넷째 아들, 회안대군(懷安大君). 신의 왕후(神王后) 한씨(韓氏)의 소생. 정종에게 적사(嫡嗣)가 없어 차례에 따라 자기가 후계(後繼)로 될 줄 알았으나, 개국(開國)ㆍ정사(定社)에 공이 컸던 정안대군(靖安大君) 방원(芳遠)이 유망함을 보고 이를 시기, 직위에 불평이 있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박포(朴苟)와 서로 모의하고 방원을 꾀어 내어 없애려고 1400년(정종 2) 거병(擧兵), 정종이 이문화(李文和)를 보내어 달랬으나 듣지 않고 서로 싸우기에 이르렀다. 평소에 활을 잘 쏘던 아들 의령군(義寧君) 맹종(孟宗)마저 병석에 눕게 되어 성균관 서동(西洞)으로 도주하다가 사로잡혀 목숨을 구걸, 토산현(兎山縣)에 귀양갔다가 병으로 사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방간 [李芳幹] (인명사전, 2002. 1. 10., 인명사전편찬위원회)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회안대군-

    이름은 이방간(李芳幹)이며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넷째아들이다. 1397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에서는 정도전 세력을 제거하는 데 협력하였다. 그러나 1400년(정종 2)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동생 이방원(李芳遠)과 개경에서 일전을 벌이게 되었고, 이는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이름 지어졌다. 그러나 승리는 이방원에게로 돌아갔고, 이방원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반면, 이방간은 귀양살이를 하다가 1421년(세종 3)에 세상을 떠났다.

    -출처: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