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의 한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장기에는 초나라 한나라가 있는데요.. 왜 한자체가 다를까요?
아니 체만 다른게 아니라 아예 틀린것 같은데..
왜그런지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진기한펭귄154입니다.
1. 장기의 명칭
장기(將棋)는 두 사람이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알을 번갈아가며 두어서 승부를 내는 민속오락으로 우리의 고문에 ‘상희(象戱)’라고 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의 문헌에 장기라는 말이 보인다. 이 장기는 바둑과 더불어 ‘기박(棋博)’이라 하며,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한가롭기만 하면 즐길 수 있는 진법(陣法)놀이이다.
장(將, 王 : 楚·漢)은 각 한 짝, 차(車)·포(包)·마(馬)·상(象)·사(士)는 각각 두 짝, 졸(졸, 병)은 각 다섯 짝으로, 한쪽은 16짝이며, 양쪽을 합하여 32짝을 가로 10줄, 세로 9줄로 그려진 네모꼴의 장기판에 포진시켜 적의 장(왕)을 진퇴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승패를 결정하는 추리와 연상(聯想)과 적수(敵手)의 심리를 이용하는 지능적 오락이다.
나무토막에 글씨를 쓰고 그것을 조각한 알〔棋〕로 적의 장(왕)을 꼼짝 못하게 포위하여 승패를 겨루는 까닭으로 그 명칭을 장기라고 붙였다 한다. 상희라는 이름은 장기의 발생기원이 코끼리가 많고 코끼리를 숭앙하는 불교국인 인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 코끼리는 몸집이 크고 행동도 느릿느릿 육중하며 믿음직스러우므로 잔재주를 잘 부리고 행동을 경솔히 하는 인간들도 이 코끼리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상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속설도 있다.
서거정(徐居正 ; 1420~1488)의 《필원잡기 筆苑雜記》나 《세조실록 世祖實錄》등에는 상희라는 표현 아래 장기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고, 중종대(中宗代) 심수경(沈守慶)의 《유한잡록》에 잡기(雜技)를 설명하는 가운데 비로소 장기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다른 기록에 의하면 장기의 명칭이 개정되기 전에는 혁기(奕棋), 상기(象棋)등의 명칭도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2. 장기의 유래
장기는 약 4,000여 년 전에 인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인도의 불교도들이 전쟁이나 살생을 금하는 계율 때문에 인간본연의 어떤 파괴본능을 달래고, 수도를 하는 시간 외에 잠시라도 세속에 흐르기 쉬운 잡념을 떨어버리기 위해 전쟁을 모의(模擬)한 소재로 장기를 발명하였다고 하며, 또 일설에 미얀마 사람들은 자기네의 고대국 타이링의 왕비가 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왕을 지극히 사랑한 왕비가 전쟁만을 일삼고 늘 싸움터에만 나다니는 왕을 궁중에 머물게 하기 위해 궁리 끝에 만든 것이라고 주장 하고 있다. 물론 말의 형태가 달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장기의 발상지는 중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장기조각(말) 자체가 초(楚), 한(漢)으로 되었고,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왕 유방(劉邦)의 각축전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약 2,000년 전 삼국시대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장기의 연원은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해지며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상희도법 象戱圖法》에는 장(將)。사(士)。보(步)。차(車)。마(馬)。노(弩)。포(포) 등의 말씨가 있어서 오늘날 유행되고 있는 장기와 비슷했다. 지금 유행되고 있는 중국장기는 기원 10세기 중엽에 후주(后周)의 무제(무제, 951~953)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중국 말로 장기를 흔히 ‘상희(象戱)’ 또는 ‘상기(象棋)’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상(象)’은 코끼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관한 여러 가지 도구와 인마(人馬)의 형상을 상징하였다고 한다. 《사해》(辭海)의 해설을 보면 중국장기는 북송과 남송의 교체시대에 완전히 틀이 잡혀 광범히 유행되었다고 하며 조선의 《고려사。악지》에는 예성강노래의 유래와 더불어 송나라 상인과 고려사람이 며칠 동안 연거퍼 장기를 두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장기를 두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서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며 시골 노인들의 소일거리로 크게 유행되었다. 선조시대의 문헌 《연려실기술》에는 모사와 군신들이 장기를 둔 데 대한 기록이 여러 군데 나타나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자인 노사신이 장기를 놀다가 ‘차’만 잡히면 상대방에게 애걸복걸하여 물렸다고 해서 “노정승의 ‘차’처럼 불로장생했으면 좋겠다”는 속담까지 생겼다고 한다. 장기와 관련하여 우리 민족에게는 지배계급의 오만성과 노동인민의 슬기로운 지혜를 대조적으로 보여 준 민담도 있고 멋들어진 민요도 있다.
광복 후 늦은 감이 있기는 하나 1956년 10월 10일, 장기계의 뜻있는 유지들이 모여 장기의 기도를 확립하고, 이제는 민족오락으로, 또는 지능오락으로까지 애호를 받게 된 장기의 오묘성(奧妙性)을 더 높여 보다 체계적으로 장기의 기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기도원을 창설하였다. 다시 67년에는 한국장기원으로 개칭하였고, 73년에 와서 한국장기협회로 다시 개칭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도는 고대 최고의 문명국이며, 이 놀이는 고도의 지능을 요하는 오락인 까닭에 장기는 인도에서 발명, 발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게 본다면 장기는 적어도 3,000~4,000년 전에 인도에서 발명, 사용되었고, 그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한국적인 장기로 정착된 것으로서, 그 시기는 신라 말기에서 고려초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 장기는 인도장기·중국장기·일본장기로 다소 다르게 고정되었고, 서양으로 퍼져간 것이 ‘체스’라고 하는 서양장기이다.
3. 장기의 모양
조선장기는 중국장기와 마찬가지로 장기씨가 도합 32개로서 양편이 각각 16개인데 ‘장’군이 한 개씩(한쪽은 《한》, 한쪽은 《초》라고 씀)이고, ‘차’가 두 개, ‘말’이 두 개, ‘상’이 두 개, ‘사’가 두 개, ‘포’가 두 개, 병졸이 5개(‘한’측은 졸병을 ‘병’이라고 쓰고, ‘초’측은 졸병을 ‘졸’이라고 씀)씩이다.
조선장기씨의 크기는 ‘차’, ‘말’, ‘상’, ‘포’등이 같고 ‘사’, ‘졸’은 이보다 작으며 ‘장’이 제일 크다. 지난날 조선장기씨는 나무의 생김새대로 잘라서 만들었는데, 대체로 크기는 비슷하나 모양이 다양하였으며 때로는 육각형을 다듬어 만들기도 하였다. 중국장기씨의 모양은 보통 둥글고 장기씨를 놓는 통은 네모가 나서 고대의 천원지방(天圓地方)설을 따르고 있다. 일본장기씨는 도합 40개로서 양편이 각각 20개인데 왕(王), 비(飛) 각(角)이 각각 한 개씩이고 향차(香車), 계마(桂馬), 금장(金將), 은장(銀將)이 각각 두 개씩이며 보(步)가 각각 9개씩이다. 장기씨의 모양은 오각형이며 끝이 뾰족하고 꼬리가 두껍다. 세 민족의 장기씨의 모양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중국장기는 ‘천원지방’설을 따르고 유가적인 조화적 미를 추구하는 반면에 일본장기는 불규칙적인 미와 실용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조선장기는 대체로 규칙적인 미를 추구하면서도 일부 균형적 미를 파괴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조선장기의 글자는 ‘한’측의 글자를 해서로 쓰고 붉은 색으로 표시하며 ‘초’측의 글자를 초서로 쓰고 검은색 혹은 푸른색으로 표시한다. 중국장기의 글자색깔은 조선장기와 마찬가지로 한쪽은 붉은색으로 표시하고 한쪽은 검은색으로 표시하는데, 이것은 한민족과 조선민족의 고유한 고대의 음양철학관의 반영이라고 생각된다. 즉 붉은색은 양을, 검은색은 음을 표시하며 이와 관련하여 장기를 둘 때 흔히 윗사람에게 붉은색의 장기씨를 먼저 권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이와 달리 일본장기의 글자는 죄다 검은색으로서 이는 일본민족이 예로부터 자체를 단일민족으로 인정해 오던 전통적인 관념 및 검은색에 대한 그들의 민족신앙과 연계시켜 볼 수 있으며, 음양설에 대한 고대 일본사람들의 신념이 조선사람이나 중국사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희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