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의 역사와 유래를 알려주세요.
음력 1/15일은 정월대보름 입니다. 오곡밥도 먹고, 쥐불놀이도 한다고 합니다. 정월대보름의 역사와 유래가 궁금합니다. 좋은 자료 부틱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꽃다운무당벌레145입니다.
정월 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 중에 사금갑(射琴匣)이 있다. 원전은 삼국유사 기이 제1편 소지왕 이야기다.
신라 시대, 임금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으로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의 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잠시 후에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신하에게 편지 봉투를 주고는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하는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 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였다.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를 꺼내서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
임금은 곧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다음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왕비와 어떤 중이었는데, 중이 왕비와 한통속이 되어[2]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3]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이 찰밥이 발전해 약밥이 되었다.
까마귀뿐 아니라 쥐와 돼지도 활약을 했는데도 까마귀만 챙겨주는 것이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쥐와 돼지는 이미 12지신에서 한 자리씩 (심지어 첫 자리와 끝 자리) 차지하고 있는 관계로 이런 일이 아니라도 따로 쥐와 돼지를 기리는 행사가 많은데, 까마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스타박스입니다.
정월의 절일로는 설과 대보름이 있습니다. 태고 적 풍속은 정월대보름을 설처럼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동국 시세기'에 의하면 대보름에도 섣달 그믐날의 수세하는 풍속과 같이 온 집안에 등불을 켜 놓고 밤을 새운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정월대보름을 8대축일의 하나로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었답니다.
또한 일본에서도 대보름을 소명월(小正月)이라 하여 신년의 기점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답니다.
정월 대보름날을 신년으로 삼았던 오랜 역법의 잔존으로 보이며,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건데
정월대보름의 풍속은 농경을 기본으로 하였던 고대 사회로부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