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당시 임진왜란으로 명과 조선은 쇠퇴하고 후금이 점차 세를 키우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두 세력이 충돌하자 광해군은 이런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명이 임진왜란때 도와줬으니 결국 파병을 하면서도 강홍립으로 하여금 정세를 파악하여 상황에 맞춰 행동하라 지시하였죠. 강홍립은 후금에게 둘러쌓이자 항복하고 명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으며 조선은 후금과 싸우길 원하지 않는다는 등 호소하였고 후금 입장에선 명과 싸우는 중에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는 조선과도 싸울 이유가 없으므로 죽이지 않고 포로로 삼죠.
조선 측은 명을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후금과 친선을 도모하여 중립적인 정책을 취하면서 광해군은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현실적이고도 실리적인 정치를 펼쳤고 이것이 광해군의 중립외교입니다.
그때 조선에서 50만명 이상이 포로로 끌려 갔다고 합니다. 그 때는 기계가 없어서 생산수단이 사람이었습니다.
끌려간 사람들은 모두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대의 남자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조선이 망한 가장 큰 이유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라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