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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1

정조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혜경궁홍씨라는 분은 왜 황후가 아니라 호칭이 다른건가요?

보통 왕비들은 --황후 라고 부르던데, 정조의 어머니로 잘 알려져있는 혜경궁홍씨라는 분은 왜 황후가 아니라 호칭이 다른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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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승윤 축복
    승윤 축복23.05.21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세자빈이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정실 부인이었지요. 하지만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고 죄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폐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정조가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이미 죄인의 아내를 왕후로

    추대하지는 못했습니다. 정조도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라 영조의 다른아들의 양자로 입양되어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왕후로

    추대는 되지 못했지만 혜경궁 홍씨의 권력은 막강하였으며 정조는 효를 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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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정조의 어머니 이자 사도 세자의 부인 입니다. 사도 세자는 왕의 신분으로 죽은게 아니라 세자의 신분으로 죽은 것이기에 그 부인도 중전이나 왕후가 아니라 세자빈이였고 더욱이 영조가 새로 부인을 얻어 중전의 자리가 있었기에 왕실 계보상으로 중전도 대비도 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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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대 초반부터는 사도세자의 병증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을 맞있으나 혜빈(惠嬪)로 추서되면서 세자빈의 위치를 그대로는 유지하였습니다. 이후 아들 정조를 할아버지 영조에게 보내 함께 기거하면서 왕세손 수업을 받게 하였습니다. 정조가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조는 정조를 자신에게 보낸 것이 사도세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효를 다한 것이라고 하며 갸륵하다는 뜻에서 ‘가효당(嘉孝堂)’이라는 당호를 내렸습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궁호가 혜경(惠慶)으로 올라 혜경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순조(純祖) 즉위 초부터 정조의 유지임을 강조하면서 아버지 홍봉한과 친정 집안의 신원(伸冤)을 요청하였고, 순조 14년(1814) 신원과 복권을 받았습니다. 1815년 창경궁에서 81세로 사망하였으며, 경기도 화성의 융릉(隆陵)에 남편인 장헌세자〔사도세자〕와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고종의 5대조 추존에서 장종과 함께 헌경왕후(獻敬王后)가 되었고, 대한제국 때는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다시 격상 추존되었습니다. 시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유정인철계성헌경왕후(孝康慈禧貞宣徽穆裕靖仁哲啓聖獻敬王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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