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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융희 3년)에 일본인들이 우울함과 걱정 근심에 빠진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궁궐에 동물을 들여왔는데, 일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궁궐 안 전각 일부를 철거하고는 서양식 정원과 건물을 세우자고 순종에게 건의. 순종은 이를 허가하고 창경궁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개명. 이로 인해 창경궁은 왕족들만 출입하는 궁궐이 아닌 국민 누구나 방문 가능한 시민공원으로 바뀌어 버린다. 한반도 최초의 시민공원이다. 개원식에 순종은 모닝코트에 중절모와 지팡이까지 짚은 서양 신사의 모습으로 참석했으나 정작 동물원 개원을 주도했던 이토 히로부미 초대 통감은 개원 닷새 전에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하여 참석하지 못했다.
왕족의 거주 공간이었던 창경원은 개원과 동시에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누구나 입장료만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는 공중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배치를 살펴보면, 중앙에는 박물관 영역, 북쪽에는 식물원 영역, 남쪽에는 동물원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식물원 지구에는 대온실을 중심으로 한 식물배양실등 열대 식물의 전시 및 관리 기능이 집약되었으며, 동물원 영역의 연못은 수금방양소로 만들고, 이 주변으로 각종 동물사와 동물 온실을 신축했다. 박물관 시설은 본관 건물뿐만 아니라, 기존의 전각들을 전시 시설로 흡수했으며, 전각 사이에는 서양식 정원을 조성해 꽃을 계획적으로 재배하기도 했다.
창경원 시절 명물이자 마스코트격으로 떠올려지는 것이 바로 창경원 코끼리였는데 이 당시 창경원에 놀러왔던 중노년 세대들에게는 어린 시절 창경원에 서식하는 코끼리에게 먹이를 던져주거나 코끼리가 길다란 코로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거나 환호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었던 동물이었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둘리와 싸우다가 역관광 당하는 코끼리 이야기가 이 코끼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에피소드다.
출처: 나무위키 창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