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로 가면 과거제 합격유무에 따라 양인의 신분이 좌지우지되면서 양인과 노비의 제도가 자리잡히게 됩니다. 양반 집안이 3대를 넘어가도 과거를 통과하지 못하면 상민으로 신분이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상민이 양반으로 출세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있기는 있었ㅅ브니다. 대표적으로 정충신. 이쪽은 아예 노비 출신이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워 양인이 되고, 그 후 과거에 합격해서 양반이 되었습니다.
또 과거 제도는 당시 조선 지식인들에게 장원 급제의 꿈을 안겨주었다. 경쟁률이 매우 낮기는 해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과 조금이나마 기회가 있는 것은 사회 분위기에 매우 큰 차이를 줍니다. 이것이 근대로 오면서 신분제가 무너진 사회에서 누구나 공부만 열심히 하면 신분상승으로 사회에 지도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고,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는 힘들게 살아도 자식만은 나아지길 바라며 교육에 온갖 정성을 쏟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과적으론 근대화에 발판이 되고 높은 과학기술의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7세기 이후로 과거를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갔습니다.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부류는 서얼과 그 후손이다. 이미 명종 때에 서얼 당사자들이 문과 응시를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얼과 그 후손에 대한 제재 조치는 그 후 점차 완화되어서 인조 때에 서얼 자손들에게 문과 응시가 허락되었다고 합니다.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서얼 당사자에게도 문과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