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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2년(993년) 거란이 80만 대군을 앞세워 1차 침입하였을 때 고려 조정에서서는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강화를 맺자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그런데 거란의 침략 목적을 파악한 서희가 스스로 강화 회담에 나섰습니다.
거란의 소손녕은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주장하고 고려가 송(宋)과 교류하고 있음을 문제 삼아, 고려가 차지한 옛 고구려 땅을 거란에게 내 놓고 거란과 국교를 맺으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서희는 고려야말로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거란과 교류하려 하여도 압록강 일대의 여진족 때문에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일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고려의 왕이 거란에 직접 가 조회하고, 거란의 연호 사용에 합의하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압록강 하류 동쪽 편의 여진족 거주지 280리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는 여진을 몰아내고 강동 6주롤 차지할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