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류경범 과학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현재의 과학수사를 빰칠만한 과학수사가 있었습니다.
법의학서에 해당하는 무원록 시리즈(무원록은 중국의 법의학서이고, 세종 때 조선에 맞춘 신주무원록, 영조 때 신주무원록에 주석과 내용을 추가한 증수무원록이 있었습니다.)와 영조와 정조 때의 사건기록을 담은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또한 식초를 이용하여 루미놀 반응과 비슷한 반응으로 혈흔을 찾기도 하였고, 시신의 상처부위를 찾기 위해 술찌꺼기와 식초로 상처를 외부에 올라오도록 한 기록도 많습니다.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매우 처라'가 아니라 접수-진술-초검(검시)-2차진술-복검(2차 검시)의 순으로 진행되었는데요, 복검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하면 3차, 4차 검시가 이뤄지고 각 검시때마다 다른 사람이 진행하고 앞선 검시 내용을 모르게하여 부정을 방지하는 등 오히려 현대보다 더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