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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키위191
넉넉한키위19123.11.12

한국도 과거에 박물관에서 절도도난 사건이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사건인가요?

한국도 해방이후에 국내박물관에서 전시이후에 절도도난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사건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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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03년 5월 15일 밤 10시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도박빚 탕감을 목적으로 한 범행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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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03년 5월 15일 공주박물관에서 일어난 국보 도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밤 10시 강도 2명이 흉기로 위협해 눈과 입을 가린 뒤 결박하고 1층 전시관에 들어가 유리 진열장를 부수고 국보 제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고려청자 2점, 분청사기 한 점을 들고 달아났습니다.

    다행히 신속히 용의자들이 검거되었고 도난당했던 국보과 문화재들도 무사히 회수하였지만 당시 박물관들의 보안 불감증을 보여줬습니다.

    2006년 11월 6일 익산보석박물관에 귀금속 120여점을 털어 갔는데, 아직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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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국보 도난 사건입니다.

    1972년 공주시 중동에 세워진 공주박물관은 당시 국립박물관 건물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었는데 기존 무령왕릉 출토 유물 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백제 유물들을 소화해내기 부족해 1995년 1층 강당을 전시실로 바꿀 정도로 협소한 부지와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2003년 10월 임시 휴관하고 2004년 상반기에 현재의 웅진동 신축 건물로 이전하기 위한 준비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물관의 보안 관련 시설을 전혀 보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공주박물관은 국립 박물관 중 유일하게 별도의 방재실을 갖추지 않았고 결국 전문 방재요원이 아닌 당직자 1명이 박물관 전체를 밤새 지켜야 하는 실정으로, 관장을 포함해 직원 12명으로 지방 소재 국립박물관 중 가장 적은 수로 일주일에 1번 숙직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당직 근무 시 셔터문을 내리고 근무해야 함에도 아무도 셔터문을 내리지 않고 근무했습니다.

    2003년 5월 15일 밤 10시쯤 국립공주박물관에 흉기와 전기충격기를 소지한 강도 2명이 침입,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박물관 당직자를 흉기로 위협해 눈과 입을 가린 뒤 결박하고 1층 전시관에 들어가 유리 진열장을 부수고 국보 제 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고려청자 2점, 분청사기 한점을 들고 달아나게 됩니다.

    사건 이후 문화재청과 충남지방경찰청은 도난당한 국립공주박물관 소장의 국보 제 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비롯한 문화재 4점에 현상금 2천만원을 걸었고 문화재청은 도난범과 도난품들을 발견하거나 밀거래 정보를 입수할 경우 이를 신고하면 2천만원 현상금을 지급할 것이라 밝혔으며 조속한 문화재 회수를 위해 범인이 자수할 경우 관계기관의 협의를 통해 법이 허용하는 최대의 관용을 베풀것이라 밝힙니다.

    이에 5월 22일 시민의 제보로 용의자 2명이 체포, 이들을 체포하면서 도난당한 문화재는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체포 당시 타고 있던 차의 짐칸에 범행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 ,박물관 당직자로부터 범인이 맞다는 진술을 토대로 이들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내는데 이들은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한 용의자들이었고 24일 진범 중 한명인 임모씨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체포되어 공주경찰서로 인계됩니다.

    그는 범행 일체를 부인했으나 하루만에 자백, 도주한 공범을 문자로 설득해 11일 만인 5월 26일 경기도 용인시 한 우유 대리점 앞 화단에 숨겨두었던 국보 247호를 회수, 용의자 임씨를 경찰에 제보했던 손 모씨도 이 사건의 공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손씨가 국보 등의 판매처를 물색하는 과정에 함께 했던 양 모, 김 모, 윤 모 씨가 붙잡히면서 연루된 구속자는 5명이 됩니다.

    이어 30일 호남고속도로 유성 인터체인지 부근 숲 속에서 공범 박 모씨가 숨겨 놓은 고려시대 상감 청자 2점, 분청사기 등 문화재 석점을 찾아 인도하면서 도난당한 문화재가 모두 회수됩니다.

    6월 2일 마지막 용의자 박 모씨가 공범인 임 씨와 가족들의 회유에 자수하면서 사건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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