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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가지나무
구르미가지나무23.08.11

과거 전쟁에서는 왜 공성전을 했던것일까요?

과거에 있었던 전쟁이나 전투들을 보면 서양을 포함해서 우리나라도 그렇고

왜 그냥 수도로 바로 쳐들어가지 않고 성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서 공성전 전투를 하였던건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ㅠㅠ좀 비효율적이고 바보같아보여서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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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성전을 하는것은 과거의 병참

    보급수단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 시대에 보급은 수로를 통하는 방법을

    썼기에 보급차단을 위해서는 필요한

    전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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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성전을 굳이 한 이유는 예를 들어 임진 왜란 당시 일본군이 부산을 거쳐서 진주, 충주성 등을 안 거치고 바로 서울 한양으로 온다고 가정 합시다. 그럼 일본 군 입장에서는 시간 낭비도 안하고 더 좋겠지요. 하지만 진주성을 안털고 바로 서울로 가다가는 중주 쯤에서 진주성에서 보내 온 원군을 뒤 후방에서 급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즉, 앞에서는 중주성의 적군이 있고 뒤 후방에서는 진주성에서 보내 온 적군과 둘다 상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일본군 입장에서는 앞뒤로 포위를 당해 승전의 가능성이 훨씬 떨어 지겠지요. 그래서 이러한 위험 요소를 제거 하고자 귀찮아도 하나 하나 공성전으로 성을 제거 해 나가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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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의 병참 보급수단의 한계 때문으로 그 시대에는 비행기라는게 없고 보급품을 현대처럼 차량에 실을 수 없고 수레가 완벽한 것도 아니며 수로를 통하면 인력이나 수레보다 더 많은 보급을 실을수있고, 물이 너무 중요해 행군로가 사실상 정해져있었습니다.

    이 행군로가 아닌 다른 곳을 택한다는 것은 도박을 의미, 아주 소수의 별동대가 아닌 한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국방을 하는 측에서도 이것을 모를리 없어 이런 진격로의 요충지마다 요새나 성을 지어 방어했습니다.

    여기에 보급 문제를 해결해 다른 성을 모두 우회하고 도시에 다다랐다 해도 결국 도시를 상대로 공성전을 벌여야 했는데 이때 정리하지 않고 넘어온 성에서 지원군을 보내온다면 포위당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전근대 시절 대규모 병력을 진군시킬때 행군로가 사실상 정해져있고 그런 행군로에 적절한 기지를 지음으로써 방어측에서 공성전을 강요할수 있었습니다. 요새나 성을 피해 우회기동하는 것은 소수 별동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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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과거 전쟁에서는 공성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공성전은 적의 도시나 성채를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투입니다. 공성전은 매우 어려울 수 있지만, 성공하면 적의 군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공성전을 했던 이유는 적의 도시나 성채를 점령하면 적의 군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적의 도시나 성채를 점령하면 적의 물자와 식량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적의 도시나 성채를 점령하면 적의 영토를 장악할 수 있습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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