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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3.08.24

일본으로 넘어간 도자기 장인들의 대우는 어땠나요?

임진왜란시기에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도자기 장인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었나요? 그들이 귀환을 거부한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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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들에게 후한 대우를 해줬다고 합니다.
    1598년 사쓰마 번의 다이묘 시마즈 요시히로는 납치해 간 조선의 조선의 도공들에게 매우 뜻밖의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아주 후한 대우를 해준 것입니다. 그들 조국 조선에선 도자기를 구우며 군역을 비롯한 각종 부역에 시달리게 하면서도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고 농민을 우대하고 그들과 같은 상공인은 천대했는데 일본에선 도자기 굽는 일에만 전념하게 하고 계급도 조선처럼 하층민이 아니고 성과에 따라 평민도 아닌 지배 계급인 사무라이 계급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해 준 것입니다.

    아울러 시마즈 가문은 그들을 조선과 똑같은 환경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조선말을 쓰고, 조선 사람끼리 결혼하게 하고, 조선의 풍속을 그대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최적의 도자기 생산을 위해 환경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번주의 판단이고 결정이었습니다. 결국 심당길은 그의 고국 조선과는 물과 토양이 다른 일본이지만 그런 최적의 작업 환경에서 도자기를 굽는 데에만 열중해 결국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세계적인 명품 사쓰마야키가 조선 도공에 의해 탄생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도공들이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간것도 일본 귀족들의 다기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명한 심수관이라는 도공도 이때 끌려갔습니다. 처음엔 관심을 안두다 후세 도공들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국보중에 다도에 쓰이던 이도다완이라는 차그릇이 있는데 소박하면서도 품위있는 모양이 많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데 이것도 우리의 막사발이라 불리우는 다기가 일본에 넘어간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대표적인 도공인 심수관 이란 분이 있습니다. 1598년 일본으로 납치된 심당길의 후손이이신데 아직까지 심수관이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일본도예계를 이끌고 계십니다. 조선출신의 도공이란걸 잊지 않고 지금까지 후손들에게 그 이름을 물려줄정도로 애국심을 가지셨음에도 그 실력을 일본에서 인정받은 분 입니다.

    이를 미루어 보아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도공들은 기술자였기에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았음을 짐작해 볼수 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는 다도가 유행하여 찻잔을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도공들을 끌고가서 한 지역에 몰아넣고 도자기를 굽도록 했습니다. 중국 도자기는 크고 화려하나 다기로 사용하기 어려웠고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정교하고 담백하여 차를 마시기에 아주 적합했기에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간 것입니다. 또 일본은 유럽으로 다기를 수출하는 등 무역을 하는데 도자기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장인으로 극진히 대우해주었기 때문에

    조선에서 천한 취급을 받던 도공들이 다시 조선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착을 하거나 귀환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훌륭한 도자기를 얻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던 각 다이묘들은 이들을 장인으로, 솜씨 좋은 기술자는 사무라이 수준으로 후하게 대접해줬기 때문입니다.

    또 뛰어난 도공에게 자신의 딸을 내주며 사위로 삼아 친인척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만 도공이라 해서 모두 좋은 취급을 받은 것은 아니였는데 끌고 간 도공들 중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밥을 주지 않아 굶겨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기술이 새어나갈까봐 조선인 도공들이 사는 마을을 엄격하게 감시, 혼인도 다른 마을과 못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임진왜란시기에 일본으로 넘어간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에서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높이 평가했으며,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습니다.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의 도자기 생산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을 위해 일본의 여러 지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들은 일본의 도자기 생산지에서 도자기 생산 기술을 가르치고, 도자기를 생산했습니다. 이들은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도자기 장인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도자기 장인들은 일본에 남기를 원했습니다. 일본에서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본에서 도자기 생산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도자기 장인들이 일본에 남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