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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
사일러스23.08.03

흉노족과 신라는 실제로 어떤 관련이 있나요?

신라의 왕족이 흉노족과 관련이 많다는 주장들과 문헌들을 종종 접했는데, 이 둘은 실제로 관련이 있나요?

흉노의 위치는 중국에서도 북방에 있는데, 어떻게 고구려를 뚫고 한반도 남쪽까지 올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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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0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흉노족이 신라왕족설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한쪽은 김일제가 한무제 시기 포로로 잡혀온 흉노의 휴저왕의 아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신라의 김씨들이 흉노족의 후예들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태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흉노족과 신라 김씨 왕족 간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문무왕의 비문 등에 중국 서북지역에 살던 흉노의 후손이라 적시하고, 군사적으로 강한 흉노와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국력을 키웠습니다. 흉노인과 신라인은 KBS역사물 방영하면서 테스트한 DNA로 인종적 관계가 있음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심라인들이 북방지역과의 관계를 과시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입니다. 마립간 시대가 되어 김씨가 왕위를 독점하면서 북방계의 유물과 적석목곽분을 만들었는데 신라가 통일할 무렵 신라인들은 묘비명에 자신들이 중국 서북지역에서 살던 흉노의 후예라고 당당히 적어놓았다고 합니다. 신라인들이 말하는 흉노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미개한 유목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흉노는 유라시아를 호령하는 강력한 무기와 군사의 유목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였고 그래서 흑해 연안에서 신라까지 수많은 나라가 자신을 흉노로 자처했다고 합니다. 고구려, 백제, 부여와 같은 부여계의 나라와 맞서서 뒤늦게 경쟁을 시작한 신라는 건국 시기부터 이어져오던 북방 초원과의 관련성을 선민의식으로 내세웠습니다. 신라의 1천년 역사에서 흉노는 자랑이었고, 또 작지만 강한 나라로 성장한 신라를 강성하게 했던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신라의 전신인 삼한 중 ‘진한’(辰韓)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진한 사람들 중에는 진나라의 만리장성을 쌓는 노동을 피해서 도망친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으로 유명한 진시황이 살았던 시절은 기원전 3세기 중반이니 지금부터 2300년 전인데 이 진한으로 온 사람들은 중국 북방에서도 특히 진(秦)나라 사람과 가까우며 실제로 사용하는 말도 경주 일대의 사람들과 다르다고 하여 사람들이 쓰던 말까지 자세하게 적어놓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고구려 같은 나라도 없던 시기 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무왕 비문에는 신라 김씨들이 흉노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여겼다는 조상의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신라 김씨 왕족의 뿌리가 바로 흉노족 김일제라는 것이다. 신라는 흉노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의 뿌리가 흉노족이라는 사실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신라는 흉노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의 뿌리가 흉노족이라는 사실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일제는 기원전 86년에 3만 여명의 흉노족을 데리고 중국 산둥성에 투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김일제 후손들은 7대에 걸쳐 한나라에서 영화를 누렸지만 중국 대륙에서 전한과 후한을 가르는 대격변이 일어나면서 중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전한은 왕망의 쿠데타로 인해 망했는데 당시 왕망을 도왔던 김당은 김일제의 증손자이다. 또한 왕망과는 이종사촌 사이로 후한을 건국한 유수가 왕망을 멸하면서 더불어 김일제의 후손 모두 멸할 위기에 처해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