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결혼전 약혼을 했나요?
조선시대에 결혼당사자간 연애가 아닌 부모의 의사에 의해 결혼이 결정되었는데 당시에 결혼하기전에 집안끼리 약혼하고 결혼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구식혼례라 하여 예서의 규범을 따랐는데 예서의 혼인절차 중 의혼과 납채에 대한 부분에 약혼의 개념이 포함됩니다.
예서에 의하면 남자는 17세 이상 20세, 여자는 14세 이상 20세에 의혼을 하는데 먼저 중매로 왕래하게 하여 혼담을 통하도록하고 여자쪽의 허락이 나면 납채를 보낸다고 합니다. 여자쪽의 허락과 함께 납채를 보내는 것이 약혼에 해당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결혼은 보통 한 가족이 중매인을 통해 다른 가족에게 청혼할 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신랑의 가족은 보통 결혼식 날 전에 신부의 가족에게 보통 돈의 형태로 약혼 선물을 줬다고 하네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장차 혼인할 것을 약정하는 가문 혹은 당사자 사이의 혼례의식으로 약혼을 많이 진행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조시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에는 결혼 전에 약혼을 하는 관행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약혼은 결혼의 의사를 서로 확인하고, 양측 가족 간의 혼인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약혼은 일반적으로 두 가족 간의 협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주로 부모님의 중재로 결정되었습니다. 양측 가족이 만나서 상호적으로 신분, 재산, 가문 관계 등을 검토하고 혼인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혼인 계약서에는 결혼의 조건, 재산 분배, 가족 관계 등이 명시되었습니다.
약혼은 일반적으로 결혼식 전에 이루어지며, 일정한 시기 동안 유효했습니다. 약혼 중에는 양측이 서로를 기다리며, 일상적인 교류와 연락을 가졌습니다. 약혼 시기 동안에는 다른 사람과의 결혼이 금지되었으며, 약혼 파기는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약혼은 결혼에 대한 신뢰와 안정성을 조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으며, 결혼 전에 양측 가족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결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약혼이 일정한 시기 동안 유효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혼 중에도 양측의 의사와 상황에 따라 약혼 파기가 발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칭은 달았지만 우리 조선 시대에도 약혼이 존재 했습니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이른바 구식혼례라 하여 예서의 규범을 따랐는데, 예서의 혼인절차 중에서 의혼(議婚)과 납채(納采)에 대한 부분에 약혼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서에 의하면 남자는 17세 이상 20세, 여자는 14세 이상 20세에 의혼을 하는데, 먼저 중매로 하여금 왕래하게 하여 혼담을 통하도록 하고, 여자쪽의 허락이 나면 납채를 보낸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자 쪽의 허락과 함께 납채를 보내는 것이 정혼 즉, 약혼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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