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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빵단팥빵
보름달빵단팥빵23.09.27

조선시대제주도에서 태어나면 출륙금지를 하였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선시대에 제주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제주도를 떠나서 육지로 들어올수가 없는 출륙금지를 하였다는데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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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28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 당시 제주도 사람들이 얼마나 육지를 오매불망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은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지방을 떠돌면서 고기를 잡고 해물을 따며 근근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효가 해마다 점차 늘어나 몇천 명에 이르게 되자 조정에서도 이들 문제가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제주에서 나온 사람들의 무리를 두모악ㆍ도독야지ㆍ두무악 등으로 불렀는데, 대개 한라산의 다른 이름을 그들의 이름으로 붙였고 그들을 달래는 데 급급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출륙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인조 7년인 1629년 8월 13일 조선 정부에서는 제주도민이 육지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출륙금지령을 내렸습니다. 특히 제주도 여자가 육지로 시집가는 것은 철저히 막았다. 도망친 노비들도 많았는데, 『현종실록』에 의하면 그 수가 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세기에 이르러 조선 정부의 중앙 집권화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제주에 대한 중앙 정치의 간섭도 강력해졌는데 중앙 정부의 지나친 행정적, 경제적 간섭은 제주도민들을 유민으로 내몰았고 제주 유민들은 전라도, 경상도 해안과 중국의 해랑도 지역까지 떠돌게 됩니다.

    당시 제주 유민들에게는 특별한 명칭이 따랐는데 한라산의 별칭인 두독야지, 두모악으로 불리기도했고 주로 해산물을 채취해 생활한다하여 포작인 등으로 불렸습니다.

    제주도민이 제주를 떠나야 했던 원인은 중앙 관리와 지방 토호의 이중 수탈, 왜구의 빈번한 침입, 지나친 진상과 그에 따른 부역의 증대 등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주 유민의 수가 증가하고 제주 인구는 감소하게됩니다.

    조선 정부의 입장은 당시 제주는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효용 가치가 있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일본과 중국을 잇는 거점 지역으로 방위 전략상 중요하며 경제적으로 명과의 말 무역에 있어 말의 생산지이자 제주 지역 특산물 또한 중요 자원이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떠나자 제주 인구가 감소되어 특산물의 진상, 군액의 축소 등이 심각한 과제가 되었으므로 1629년 8월 13일 조선 정부는 제주도민이 육지로 나가는 것을 금하는 정책을 실시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도민이 제주를 떠나야 했던 원인으로는 중앙 관리와 지방 토호의 이중 수탈, 왜구의 빈번한 침입, 지나친 진상과 그에 따른 부역의 증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따라 제주 유민의 수가 증가하고 제주 인구는 감소하였습니다.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 제주는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효용 가치가 있었고 지정학적으로는 일본과 중국을 잇는 거점 지역으로서 방위 전략상 중요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명과의 말 무역에 있어서 말의 생산지이자 제주 지역 특산물 또한 중요한 자원이었구요.제주도민들이 제주를 떠나 제주 인구가 감소되어 특산물의 진상, 군액의 축소 등이 심각한 과제가 되었기때문에 출륙금지를 시행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도민들은 가혹한 공납과 기근 그리고 왜구들의 노략질 등으로 제주도에서 육지로 빠져나간 사람들이 많아지자 1627년(인조 7)에 조정에서는 제주도민들의 육지이동을 막는 출륙금지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 금지령은 1850년 경에야 풀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