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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나
잠이나23.09.17

양반도 직접 농사를 짓거나했나요?

조선에서 노비를 많이 거느린 양반은 일을 하지않았겠지만 노비가 없이 몰락한 양반들은 스스로 소작농이 되어서 농사일을 하기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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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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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몰락한 양반 중 잔반은 빈궁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합니다.

    양반들은 관직에서 물러나면 대개 낙향하기 마련이었습니다. 향반은 토반(土班)이라고도 하였는데 향촌 사회에서 토호적인 경제 기반을 가지고 어느 정도 행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몰락 양반의 대부분은 잔반으로서 양반의 체통을 유지할 수도 없었으며, 빈궁한 생활이나마 일을 하지 않고서는 생계조차 영위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고 합니다.

    몰락 양반은 자연히 현실 사회에 비판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보급된 서학, 동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실학이나 양명학을 연구하기도 하였고, 민중의 항거에 호응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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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몰락한 양반들은 대부분 서당 훈장을 하거나 농업 등에 종사했습니다.

    서당의 훈장이 되거나,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거나 스스로 농사를 짓는 잔반들도 있었고, 이러한 생활도 하기 힘든 잔반은 부농 밑에서 소작농으로 들어가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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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때 양반은 시기에 따라 범주가 달랐는데, 조선 초기에는 위로 3대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합니다. 이를 4대 무현관(四代無顯官)이라고 하는데, 조선 초기 양반의 비율이 적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 입니다. 이러한 양반들은 농사를 짓기도 하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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