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세기 전반에 이미 산업혁명을 완료하고 근대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한 영국·프랑스·미국·독일 등 서구 열강은 상품 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구하려 군함을 앞세우고 아시아 각국에 문호 개방을 강요해 왔는데 우선 영국이 1842년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과 강제적인 통상 관계를 맺고 이어 1860년에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여 굴욕적인 베이징조약을 맺었습니다. 이즈음 조선에도 이양선(異樣船)이 자주 출몰하여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는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대원군은 밖으로 쇄국정책을 더욱 철저히 하여 외국과의 교역을 엄금하는 한편 안으로는 천주교도들을 외세를 끌어들이는 앞잡이로 간주하여 가혹한 탄압을 가해 1866년(고종 3년) 병인사옥(丙寅邪獄)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조선인 천주교도들뿐 아니라 프랑스인 신부 9명도 처형함에 따라 프랑스 함대가 내침함으로써 병인양요가 일어났고 이어 1871년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베이징에 있던 미국의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가 군함 5척을 끌고 침략하여 신미양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만일 일본처럼 메이지 유신을 좀더 적극적으로 했더라면 적어도 일본의 식민지로 36년간을 살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