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장례식의 풍습은 어떻게 되나요?
근대까지는 유교적 풍습으로 묘를 하는 장례식의 모습이였고, 최근은 화장 후 묘를 하거나 수목장 등을 하는데요,
그렇다면 과거 우리 선조인 부여에서는 장례를 어떻게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부여의 장례 풍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에 의하면 부여에서는 5개월 동안 상(喪)을 치르는데, 오래 둘수록 영화롭게 여긴다고 하였다. 또한 여름에 죽으면 얼음을 이용한다고 하였으니, 얼음은 시신을 유지하려는 수단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왕의 장례는 현도군에서 제공된 옥갑을 사용하였다. 옥갑의 사용은 중국한나라에서 장례를 치를 때에 옥이 시체를 보존하며 생명을 재생시킨다고 믿었던 데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행태는 육체[시신]의 보존이 곧 영혼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고에 기반하고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한편 이와 같이 시신을 보존하려는 부여인들의 영혼관은 죽임을 당한 후 산 위에 시신을 방치하여 사체를 훼손하는 것, 즉 폭시(暴尸)의 형태가 형벌이 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자 집에서는 돌아갈 데 없는 여자의 영혼을 구제하여 안식처를 찾게 해주는 것이 혈족원으로서의 의무였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를 외면했을 때 원혼의 저주가 두려웠을 것이므로 댓가를 치러 시신을 수습했을 것이다. 부여에서의 투기죄에 대한 죽음과 시신의 방치라는 형벌은 부여인들이 가지고 있는 시신의 보존이나 영혼의 안식처로서 매장과 관련된 영혼관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여의 장례 풍속은 부여인, 나아가 고대 한국인들이 삶과 죽음에 대면하는 자세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을 포함하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지이다. 또한 원시 사회로부터 이어져온 동북아시아의 보편적 세계관에 입각한 고유한 생사관과 장례 풍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세계한민족문화대전 부여의 장례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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