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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사랑이에요실금나와뚝방전설
모두가사랑이에요실금나와뚝방전설23.08.30

도자기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리도자기 청화백자

안녕하세요.

청화백자는 그거자체로 장식품이자 사치품였나요?

우리나라가 이생산기술을 가진것은 어떤의미일까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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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화백자(靑華白磁)는 본래 14세기 초 중국에서부터 생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조시기부터 18~19세기까지 만들어진 조선백자의 일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순도 높은 백자에 청색의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투명유약을 입혀 환원염(還元焰)에서 구워낸 도자기를 말합니다. 청자와는 전혀 다르니 혼동하시면 안됩니다. 용도는 서민들이 쓰는 민무늬가 아닌 화려한 무늬를 가졌고 생산이 어려운 만큼 사치품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세기 중엽-19세기 말(1883년)까지의 시기로서, 광주(廣州)의 분원(分院)에서 청화자기를 생산하던 마지막 고비로 들어가던 때입니다. 이 분원의 화원(畵員)들은 궁중의 어기(御器)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쓰일 일반 용기에까지 멋대로 청화를 그려 남발했고 중국에서 수입하던 회회청(回回靑) 외에 서양에서 새로이 양청(洋靑)이 풍부하게 들어와 청화자기 자체가 대량화되면서 차차 쇠퇴기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녹로가 함부로 되어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유약의 색조도 천박한 회색기를 띤 백색이 되며 조선자기를 대표하는 광구호(廣口壺)의 경우 목이나 몸이 너무 길어져 불안정한 형태로 됩니다. 무늬는 조잡한 용문(龍紋), 봉황문(鳳凰紋), 송(松), 학(鶴)과 이른바 삼산풍경(三山風景)이라 하여 공식화된 산(山), 수(水), 선도(船圖)가 성행하며 모두 형식화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리고 청자의 영향으로 보이는 화접봉도(花蝶蜂圖),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 물결무늬(海波紋), 망상문(網狀紋) 또는 배경을 박지(剝地)하고 모두 청화(靑華)로 메운 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표면 전부를 모란절지(牡丹折枝) 같은 것으로 메우는 특수한 도안이 무늬의 도식화(圖式化)와 함께 후기의 새로운 특징으로 등장하는데 전반적으로 청화의 색이나 질이 저하되고 무늬도 조잡해지면서 기표면 전부를 함부로 덮는 경향으로 흘러 조선왕조의 멸망보다 20년쯤이나 앞선 1884년에 폐요(廢窯)되어 조선시대 청화의 역사는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