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어떤 이유로 쌓은 것인가요?
남한산성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쌓은 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어떤 이유에서 남한산성을 쌓은 것인가요?
그리고 실제로 산성을 쌓은 효과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한산성을 쌓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세운 시기와 주체에 대해선 2가지 주장이 엇갈립니다. 백제가 한성을 수도로 삼던 때 세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신라가 쌓았다고 하는 주장성(晝長城)이라는 의견입니다. 백제 때 쌓은 성이란 주장은 이미 조선 초기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한강 유역에 도읍을 정한 백제는 내 · 외 여건 때문에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한산-한성 등 여러 차례 천도를 단행하였습니다. 남한산성이 전략상 요충지이기 때문에, 조선 시대 사람들은 백제 왕도 중 하나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 · 《대동야승(大東野乘)》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대부분 조선 시대 책들은 백제 고성이라고 적었다. 다만 발굴조사 결과 신라 계통 유물은 나왔지만 백제 계통 유물이 마땅히 발견되지 않는 것은 약점이다. 아무래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으니 백제의 물건을 치웠을 수 도 있습니다.
주장성이란 주장은 《삼국사기》에 근거한 것입니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직후 당나라와 맞붙은 나당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문무왕 12년(672), 만에 하나 당나라 군대를 임진강 선에서 막지 못할 경우, 바로 다음 방어선으로 활용하고자 남한산 주위에 둘레 4,360보 규모로 성을 쌓았는데, 그 이름이 주장성(晝長城)이었습니다. 남한산성이 신라 주장성이라는 설 역시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자료에서 언급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최근 수행된 남한산성 행궁지 기단과 그 주변 지역 발굴조사 결과 신라계 유물이 출토됨으로써 남한산성은 신라 주장성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 중인 선조 28년(1595) 남한산성 자리에 다시 성을 쌓았고, 광해군 13(1621)에 개수했다. 인조 2년(1624)에는 인조가 총융사 이서에게 명하여 다시 개축했습니다.출처: 나무위키 남한산성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사적.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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