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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로맨틱한발발이14223.06.26

조선시대에도 통행 금지 제도가 있었나요?

통행금지 제도는 근현대에 들어와서 생겼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 역사 관련 뉴스에서 조선시대에 통행제도에 대해 말씀하는 걸 얼핏 들어서요.

조선시대에도 통행 금지 제도가 있었나요?

그렇다면 언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통행을 금지시킨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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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종시대 때 통행금지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원년부터 해 지는 시각을 기준으로 통행금지를 하고,

    새벽이 되면 통행금지 해제를 하는 인정과 파루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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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간통행금지는 조선왕조실록 1401년 5월 처음나오고, 이때 초경3점 이후 5경 3점이전에 행순을 범하는 자는 모두 체포할 것을 명하고있습니다.

    이때의 기록으로 보면 야간통행금지제도는 그 이전부터 시행되었고 이걸을 더욱 엄하게 다스리기로 정하였음을 알수 있으며 이 초경 3점 이후 5경 3점 이전은 오늘날의 시간으로는 대개 오후 8시~ 오전 4시반경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철저히 남녀유별사상에 입각한 이른바 내외법이 지켜졌고, 그 결과 양반, 상인 계급의 여자는 낮동안 외출을 삼가, 불가피한 용무가 있을때 부득이 야간 외출을 하게 했습니다.

    이리하여 어둠이 찾아들면 성내의 남자들은 집안으로 들어갔고, 대신 여자들이 외출, 초경이 시작되면 인정 또는 인경이 한두번 울렸고 이때부터 여자 전용 통행시간이고 남자들의 통행금지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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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원년 부터 해 지는 시각을 기준으로 통행금지 하고 새벽이 되면 통행금지 해제를 하는 인정과 파루 제도를 시행 하였습니다.

    인정과 하루는 일종의 예비 종소리로 해가 지면 도성문을 닫고 새벽이 되면 여는 시간을 알려주는 제도 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원년(1401년) 5월 부터 시행하였습니다.

    즉 통행금지 해제를 알려주는 종소리는 필수이고, 통행금지 시작을알려주는 종소리는 인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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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야간 통행 금지는 치안 유지 수단으로 특히 유용하게 활용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대략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을 금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도성(都城, 한양성)의 문은 인정(人定)에 닫고 파루(罷漏)에 연다고 되어 있는데 2경(밤 9시~11시) 후부터 5경(새벽 3시~5시) 이전까지는 대소 인원은 출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출산, 사망, 중상, 급한 공무 등의 경우에는 예외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갑오개혁이 실시되던 1895년 근대화 분위기 속에 폐지됐다가 광복 후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치안 유지를 위해 1945년 9월 부활시켰습니다.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대체로 자정~새벽 4시 사이 통금이 유지됐다가 1988년 1월 1일부터 전국에 걸쳐 통행금지가 해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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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통금제도는 조선왕조실록에는 1401년(태종 1) 5월에 처음 기록이나오고, 이때에 “초경3점(初更三點) 이후 5경3점(五更三點) 이전에 ( 오늘날의 시간으로는 대개 오후 8시에서 오전 4시 반경까지) 통행을 범하는 자는 모두 체포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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