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은 일본군을 끌어들이면서 민심의 저항을 초래하고, 고종의 이반과 권력의 기반의 조성에 실패, 좌우영군의 장악을 소홀히 하여 이탈을 방조하고 무기를 정비하지 않았으며 독립과 개화라는 정변의 목표와 지향이 당대의 사회적 요구나 정서와 거리가 멀었던 점, 일본과 청이라는 외세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파악의 미흡등이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1884년(갑신년)에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의 개화당이 독립적인 정부를 세우기 위하여 일으킨 정변으로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개화사상이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과 개혁이 일본의 힘을 빌려 추진되었다는 데 있답니다. 하지만, 자주적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한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