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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4.02.14

예전에 시묘살이할 때 어떤 생활을 했나요?

예전에 부모가 상을 당하면 3년 정도 시묘살이를 하기도 했다는데요. 그러면 3년 동안 묘 앞에서 움막을 짓고 거기서 계속 생활한 것인가요? 그러면서 어떤 생활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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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묘살이는 부모의 상중에 상주가 3년간 그 무덤 옆에서 움막을 짓고 사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시묘살이를 삼 년 동안 했습니다. 예전에는 어머니 젖을 삼 년 동안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세 살이 되어야 이가 나와서 이밥을 먹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 년간 시묘살이를 하는 이유는 내가 태어나서 세 살까지 날 먹어주고 입혀주며 돌봐줬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은공을 갚기 위해, 효심으로 시묘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즉 3년간 못마다 한 효도를 지속한다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시묘의 예의 규정은 없으나 공자때부터 있었고 고려와 조선에서는 효행의 덕목을 내세워 권장하고자 시행하였어요. 시묘살이를 하는 이유는 부모의 영혼을 위로하고, 자신의 슬픔을 달래며, 부모의 덕을 기리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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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왕 중에는 시묘살이로 인해서 건강이 악화된 왕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만큼 시묘살이를 하는 3년 동안은 개인 생활 자체가 극히 제한되었던 것 같습니다.

    관을 무덤에 묻은 다음, 아들은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산소를 돌보고 그 곳에서 3년 동안 상복을 입은 채 살았습니다. 벼슬을 하던 양반들은 시묘살이를 위해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내려와 시묘살이를 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아들은 아침저녁으로 무덤 앞에 제사를 지내며 애달프게 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3년째 되는 날 비로소 상복을 벗고 일상생활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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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유교 풍습 가운데 삼년사묘가 있습니다.

    3년동안 묘소 근처에 움집을 짓고 지내면서 묘를 돌보는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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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생업을 포기하고 묘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든 일일 뿐더러 시묘살이는 개인의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로지 부모를 그리워하는 슬픈 마음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묘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시묘가 시작되면 묘 앞에 나무와 풀로 대강 엮어 만든 여막을 만들고 그 안에서 베 옷 차림으로 거친 음식만을 먹으며 추우나 더우나 밤낮으로 상식을 올리고 슬픔에 잠겨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유교 사상이 뿌리 깊었던 조선시대에도 시묘살이를 하는 효자는 흔치 않았으므로 대개 이런 효자가 있으면 고을의 사또가 조정에 추천하여 포상을 받도록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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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묘살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이 탈상을 할 때까지 3년 동안 묘소 근처에 움집을 짓고 산소를 돌보고 공양을 드리는 일을 말합니다. 3년이라는 기간은 혼자 먹고 활동할 수 없는 유아기 동안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기간으로 보시면 됩니다.

    시묘살이 동아 자식은 산소를 돌보고 좋은 먹을거리를 대접하며 돌아가신 어버이를 모셨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드리고, 공양이라고 하는 간단한 상차림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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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묘살이는 살아계실 때와 동일하게 묘 옆에 움막을 지어 생활하며 부모가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못다한 효도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묘살이가 끝날 때까지는 일상생활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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