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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08.11

조선시대 사또는 어떤 권력이 있었나요?

조선시대 사또는 고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사람이었을텐데요. 실제로 어떤 권력이 있었나요? 현대의 판사, 시장, 경찰서장 등을 합쳐놓은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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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또는 현대 기초자치 단체의 부시장, 부구청장, 부군수 격에 기획실장, 비서실장의 업무를 담당합니다.

    호방: 사또 휘하의 재정 담당을 하는 관리입니다.

    자세한 업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왕의 대리인이니 당연히 어명을 공표하고 백성들에게 알려 따르도록 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였으며 고을의 예산을 측정해서 편성하고 집행했다고 합니다. 농경사회이니만큼 농사가 잘 될 수 있도록 농법을 보급하는 일과 흉년이나 기근이 들면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과 피해를 복구하는 일도 담당했습니다. 마을에 송사가 생기거나 범죄가 발생하면 그것을 수사[20]하고 재판하는 일까지 맡았습니다. 지방관들은 주기적으로 상급기관과 중앙정부에 업무보고를 해야 했으며 중앙에서는 이를 토대로 업무능력을 평가했다. 이때 감영에 감찰을 명령하거나 암행어사를 파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상은 민란과 같은 민중 봉기 때조차도 작용해서, 조선 시대에 극도로 분노한 민중들이 민란을 일으켜서 관아를 습격할 때도 지방관에게 모욕을 가하거나 다른 고을로 강제 추방하는 경우는 있어도 죽이기까지 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대리인을 죽이는 것은 반역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봉기를 주도한 인사들도 민란을 자처하는 경우 따로 상소를 올려서 '저희는 결코 조정과 주상 전하에게 반역할 생각이 없으며, 단지 수령의 탐학과 부패가 너무나 심하여서 어쩔 수 없이 봉기하였을 뿐입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물론 이런 대형 사고가 날 경우 대부분의 왕들은 민심을 수습하고 사건을 조기에 진압하고자 지방관을 파면하는 등의 개선조치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임명직이고 지방의회 같은 의결기구도 없어서 지방관들이 행정 뿐 아니라 간단한 입법절차나 사법처리까지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지방유지나 일반 백성을 상대로 검은 돈을 축적할 수도 있는 지위였기에, 양반 관료들은 이 사또가 되어보는 것만 해도 큰 소원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부정부패가 만연한 조선 후기에 가면 당상관에 해당하는 정3품 이상인 승지들이 관품이 훨씬 아래인 수령직으로 빠지려는 꼼수를 부렸다는 이야기도 나오기에 이른다고 합니다. 반대로 지방의 안정을 위해 중앙정부에서 고위관리 중 한 명을 차출해서 내려보내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령은 지방의 장관으로 지금의 기초자치단체급의 장이라서 제목대로 시장(광역시장 제외) 군수와 구청장과(자치구를 말함)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고을의 백성들은 '원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원님'은 수령을 뜻하는 원(員)을 존칭으로 표현한것입니다.

    삼권분립이 없었던 시기이니만큼 일반 행정은 물론이고 군사들을 지휘하거나 재판을 총괄하는 등 사실상 그 지방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사또는 지금의 군수와 읍면장 중간정도의 계급으로 현감이라는 직책으로 종6품의 외관직이었습니다. 형사소추권과 판결권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 현에서는 절대권력을 행사한 직책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사또 현감縣監은 조선 시대 현의 우두머리 입니다. 종6품으로 고려 시대의 감무監務를 고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현감은 현령종5품이 관할하는 현보다 작은 고을의 원님이었습니다. 지금의 5급 공무원 정도인 면장 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