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곰국은 언제 부터 먹기 시작 했나요?
사골을 우려낸 곰국을 개인적으로나 가족들이 좋아 하는데 문득 이런 사골을 우려낸 곰국은 우리나라 역사상 언제 부터 먹었는지 기록이 있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수랏상에 팥수라와 짝이 되는 음식으로 올렸습니다. 곰탕이란 고기를 맹물에 넣고 끓인 국이라는 의미의 공탕(空湯)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고기를 푹 곤 국이라는 의미의 곰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곰탕은 몽어유해에 따르면 몽골에서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이라 적고 슈루라 읽었다고 하며 슈루는 오늘날의 곰탕이나 설렁탕처럼 맹물에 고기를 넣고 삶는 조리법으로 끓인 국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송나라 서등이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쓴 여행기인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 사람들이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양과 돼지를 도살하는데 네 다리를 묶고 불 위에 내던지고 만일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때려죽이니 배속의 창자가 온통 찢어져서 오물이 흘러나와 이것으로 요리한 고기에 고약한 냄새가 있어 먹을 수 없었다.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통일신라시대까지도 육류를 즐겨먹지 않았던 한민족이 고기 손질에 대한 기술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수있습니다.
고려 이전까지 고기 손질에 대한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으나 고려 말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몽골인으로부터 도살법을 배우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인 소를 가장 즐겨먹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곰국은 소의 뼈나 양의 곱창 양지머리 따위의 국거리를 넣고 푹 고아서 끓인 국물을 말합니다. 조선 영조 때 간행된 몽골어 교재인 몽어유해에 몽골에서 먹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이라고 적고 이를 슈루라고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설렁탕과 곰탕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자어 어원설로 1800년대 말엽 시의전서에서 나온 음식인 고음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오래 끓이다라는 뜻의 고음을 그냥 한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의미는 그다지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소의 여러 부위, 즉 쇠머리·사골·도가니·양지머리·내장 등을 함께 섞거나 또는 단독으로 여러 시간 푹 고아서 맛과 영양분이 국물에 충분히 우러나게 한 국을 총칭하는 것이다. 곰탕·육탕(肉湯)이라고도 하며, 영양이 풍부한 내장을 넣고 끓인 국이라 보양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궁중에서는 수랏상에 팥수라와 짝이 되는 음식으로 올렸다. 곰탕이란 고기를 맹물에 넣고 끓인 국이라는 의미의 공탕(空湯)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고기를 푹 곤 국이라는 의미의 곰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능소주다식 조석상식발기(陵所晝茶食朝夕上食撥記)』에는 ‘고음탕’,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고음국’,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 이후의 조리서에는 ‘곰국’으로 되어 있다. 『시의전서』에서는 다리뼈·사태·도가니·홀때기·꼬리·양·곤자소니·전복·해삼을 넣고 끓인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설렁탕과 흡사하다.
몽골인의 지배를 받으며 전해진 고기도육법에 의해 고려말부터 먹었던것으로 시의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