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범도장군 평안북도 자성출신으로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갑산으로 이사를 갑니다. 갑산에서 수렵과 광산업으로 살아가다가 일제가 총포를 회수한다고 하자 산수 갑산 포수들과 함께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이후 대한독립군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훈련을 시키다 봉오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일본군 157명사망 200여명 중상 100여명의 경상자가 발생한 반면 우리측 피해는 4명 사망에 그친 그야말로 우리 독립운동사에 청산리전투와 함께 죄고의 전과를 이룩한
봉오동전투의 영웅이 홍범도장군입니다. 이후 자유시참변으로 수많은 독립군이 희생당하자 남은 독립군들과 독립군양성에 주력했습니다.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했고 결국 이루츠크스에서 정착해서 고려극장 수위를 하다가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을 희망했으나 고령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는지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는데 홍범도장군이 가입한 때는 레닌의 공산당이고 연합군의 일원일 때이고 스탈린의 공산당과는 다르게 봐야하는데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