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음서제는 고위신분층에게 유리하도록 운용되고 있었고, 음서 출신자들에게는 한직제(限職制)와 같은 제약은 없었습니다.
음서 출신자들은 5품 이상관에 진급해 다시 자손에게 누대에 걸쳐 음직을 전수하여 문벌이 형성되고 가족을 기반으로 족당 세력을 구축하였습니다.
음서는 관인지배층을 형성하고 관직의 계속적인 유지를 위한 조처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음서제는 단순한 관리등용법으로서 만이 아니라, 고려사회에서 지니는 역사적 의미가 매우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서제는 귀족제하에서의 습관제(襲官制)가 될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은 신분제사회에서의 가업(家業)의 전수제가 아니라, 고관이나 유공자에 대한 국가적인 보은제(報恩制)로서 실업대책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음서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현재 학계의 의견이 대립되어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그것은 음서의 기능을 높게 평가하는 견해와 낮게 평가하는 주장입니다.
전자에 의하면 음서의 존재를 과거의 한계성과 관인체제의 귀족제적 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관리등용법상 음서제의 기능을 중요시하였습니다.
또한, 음서제는 중앙귀족 중에서도 상급관직을 누리고 있는 보다 좁은 특권층의 관계 진출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일반적이고 떳떳한 출사로(出仕路)의 하나로 정치 · 사회적 의의를 크게 평가하였습니다. 나아가 음서제는 지배계층의 형성과 특권을 유지함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후자의 주장은 근원적인 출사의 길은 과거였으므로 음서는 다만 부족한 문반을 보충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간주하거나, 과거제에 따르는 부차적 내지 종속적인 관계하에서 기능함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음서제는 과거제에 부수적인 것으로 오히려 과거제가 엄존해 있었다는 방증으로 파악하였습니다. 음서의 해석은 고려사회의 정치적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논거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