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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슴새216
우람한슴새21623.08.20

고대 이집트나 페르시아 유럽의 중세 제국등을 보면 왜 근친혼이 많았을까요?

고대 이집트역사나 중동의 왕국들 또한 페르시아 제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양한 제국들의 역사를 보면

왕조시대때 근친혼이 상당히 많았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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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친혼이 많은 이유는 인구의 90%가

    무슬림인 이집트에서 종교적 신앙을

    지키고 소수로서 명맥을 이어나가지

    위한 방책으로 나온 현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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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많은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순수혈통을 지키려는 명분으로 근친혼이 성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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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이던 동양 이던 근친혼이 많은 이유는 왕실의 재산을 다른 가문과 공유 하고 싶지 않아하는 인간의 묙심을 드러 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서 유전자 적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근친혼이 성행 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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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류가 문명사회가 되면서 많은 왕족들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순혈 혈통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근친혼이 성행했지만[2] 이들 후손 중 많은 수가 유전병 같은 장애에 시달려야만 했다. 꼭 유전병이 아니더라도 신체 특징이 유전적으로 남는 경우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주걱턱으로 대표되는 합스부르크 가문이다. 결국 순혈 혈통은 오래지 않아 혈통이 끊기고, 적어도 왕족과 귀족이 결합해서 그나마 좀 유전자 다양성을 갖춘 사람이 왕위를 잇거나 이마저도 없으면 시골이나 해외에 사는 남남 수준의 먼 친척을 간신히 찾아 왕으로 세우는 일도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근친혼으로 자손을 생산하는 행위는 유전자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유전병의 발현 확률을 극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종의 번식과 생존이라는 의미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예를 들면 50명당 1명 꼴로 보인자이고 열성 유전되는 유전병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해당 유전병의 발병 확률은 대략 1만 명당 1명꼴이 된다.[3] 하지만 자신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와 근친혼을 하여 자손을 만들 경우, 한쪽이 해당 유전병의 보인자일 경우 다른 한 쪽도 해당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1/2이기 때문에, 유전병이 발현할 확률이 400분의 1로 올라간다.[4] 유전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입양간 근친혼이 대체로 관용적인 반면 혈연간 근친혼이 엄격히 금지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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