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사람들이 시간을 어떻게 알았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계는 고대 이집트에도 존재 했습니다. 해시계가 대표적이죠조선시대 쯤 되면 물을 이용한 자동시계인 자격루 같은것도 개발 했구요손목시계까지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해시계지만요그래서, 그 시대에는 시간을 어떻게 구분 했냐면1 대부분의 백성을은 그냥 하늘을 봤습니다.그 시대에는 야근같은건 일부 순찰자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밤에는 시간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고그냥 해가 어디에 떠있는지 보고 시간을 표현했습니다그리고 약속 또한 그런식으로 주관적인 기준으로 세워졌기 때문에나와 상대 사이의 인식이 몇시간정도 차이가 있어서 몇시간 기다려야 할때도 흔했습니다2 시간의 엄밀함이 중요한 경우대표적으론 궁궐안이 있는데이런 장소에는 시계가 십몇개씩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해시계 물시계 기타 여러 시계가 이미 준비되어있으며 시종이나 하급관리들이 주기적으로 시간을 확인해서 알렸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울릉도에도 옛날에 형성된 고분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 울릉도고분군(鬱陵島古墳群)이 몇개 있습니다울릉도 일원에 위치한 통일 신라시기에 세워진 고분군 울릉 현포동에 위치한 그 이후시기의 고분군등이 대표적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독살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효명세자는 22살이란 젊은 나이에 전조도 없이 병에 걸려서 사망했는데순조와 효명세자 사이는 조선에서도 손꼽히는 돈독한 부자관계였고대리청정(왕되기전에 일부 업무만 미리 맡아보는 것)하는 동안효명세자의 실력도 훌륭하다는게 입증 되어서기대를 한몸에 받는 와중에 사망한 것이라서그 기대감이 전부 의문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순조가 자기 아이들이 계속 죽는게 너무 슬프니까이미 죽은 사람을 파고들지 말자고 한 것또한 의문을 늘렸구요당시 안동김씨라는 세력가가 권력을 장악하려 해서 적이 많았기 때문에"안동김씨가 세자를 죽였다"라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노비문서는 왜 작성이되었던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누가 언제 어디서 왜 노비가 된 것인지 문서적으로 기록을 함으로써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에서는 왜 청자를 만들지 않았던 건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청자는 백자에 비해 만들이 매우 어렵습니다그런 어려운 청자기술이 발달한 것은해외 무역 덕분에 넒은 시장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며그래서 청자의 비법은 아예 국가단위로 엄격하게 관리 했는데고려 말기엔 부패한 정권때문에 문화적인 모든것이 쇠퇴했으며조선 시기에는 중국이 해금령(바다무역금지명령)을 선포했는데다더 실용적이고 유교적으로 더 아름다운 백자 기술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소실되어가는 청자기술을 발달 시킬만한 자본도 이유도 없었습니다현대인 입장에선 아쉽지만 그 시대엔 당연한 일이었던 거죠이런식으로 소실된 기술, 로스트 테크놀로지는 언제 어디에서나 있었고심지어 요즘도 소실되는 기술이 많이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백제의 전통놀이 중 바둑이 있던데 바둑은 백제의 독창적인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의 대부분 문화와 마찬가지로바둑또한 중국에서 받아온 것입니다바둑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고대중국의 전설시대인 3황5제 때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으며아예 기원전에도 관련 기록이 있지만한반도에 바둑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5세기 이후이기 때문에중국에서 수입된게 확실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도쿠가와 이예야스는 임진왜란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도쿠가와와 히데요시는 둘 모두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시절 부터각각 거의 대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오히려 명문가 출신 도쿠가와가 좀 더 유리했죠히데요시가 오다를 배신해서 정권을 잡긴 했지만오히려 그런 배신 때문에 히데요시를 싫어하게된 사람들도 많아서도쿠가와의 세력은 비교적 멀쩡히 유지되었고본토 수비병력이라는 명분도 있었기 때문에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긴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런 말은 총이 머리에 겨눠진 인질에게"너가 죽으면 범인도 죽을 태니까 죽을 걱정 말고 용감하게 싸워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당시 단종은 겨우 12살 이었습니다 조선 기준으로도 한참 어린 나이였어요거기다가 문종은 세자시절 빈으로 들인 3명 전부 이혼또는 사망하고단종의 어머니 현덕황후도 단종 낳자마자 죽었고단종의 할머니 현덕왕후도 이미 한참전에 사망했으니외척세력조차 없었습니다.세조로 즉위한 후 몇번이나 일어난 단종 복위 운동을 모조리 문제 없이 진압할 정도의 실력자면서조카던 친동생이던 뭐던 가리지 않고 전부 처리한 냉혈한이심지어 주위 사람들 까지 전부 자기 편으로 만든다음 왕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는데12살 꼬마아이한테 버티라고 하는건 너무한 요구죠거기다 주위 신하들이 전부 수양대군 편이라고 본인이 직접 말하셨는데그런 상태에서 단종이 무슨 명령을 하던 그게 통했을까요?
5.0 (1)
응원하기
소설책읽다보면 다락방이란 표현이 가끔나오던데 무슨뜻인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옛날 건물은 거의 다 뾰족한 지붕이 있었죠?지붕이 뾰족하면 지붕이랑 맨윗층 사이에 빈공간이 생기겠죠?거길 활용한 방이 다락방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이순신 장군은 어디에서 태어났나요?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한성부 건천동 이정 자택(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8길 19) 에서 태어난 다음몇년 동안 거기서 살다가 외가가 있던 아산으로 이사를 갔으며돌아가실 때 까지 본가는 아산에 있었기 때문에이순신 장군님의 죽음을 기리며 세워진 사당인 현충사도 거기 있는 것입니다
평가
응원하기